바이러스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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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바이러스
박 봉구(26)
이 춘식(25)
김 유석(26)
심 유경(24) 대학생
윤 은혜(24) 대학생
6부. 7월은 춘식을 들뜨게 한다.
계절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감촉은 다르다. 눈이나 비, 꽃으로 자연현상과 교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춘식은 사람들, 아니 여자들의 드러난 다리와 예쁜 발로 계절을 교감하곤 한다. 발목까지 늘어뜨린 치마나 무릎 바로 아래까지 내려온 스커트 또는 아예 바지로 하체를 가리는 겨울과 가을은 그래서 싫어한다. 특히 겨울 검은 가죽 부츠로 다리를 꽁꽁 가린 차림새는 계절을 원망하기도 했다. 간혹 구두를 신어도 살갗을 다 가린 양말 따위는 정말 싫었다. 아무리 추워도 그나마 질감이 두꺼운 스타킹 차림은 조금 나았다. 그것도 검정색은 겨울이란 우중충한 느낌이 들어 싫기만 했다. 차라리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화사한 꽃무늬 하얀 스타킹이나 살색의 무늬 있는 스타킹이 더 나았다.
그러고 보면 지금 차창 밖으로 지나친 풍경은 너무 좋아 환상이었다. 여름 햇살은 계집애들에게 두꺼운 옷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에 뜨이는 어떤 년들이나 반팔 아니면 어깨를 훤히 드러낸 티셔츠가 아닌가. 브라에 땀이라도 차는지 어떤 년들은 브라가 아니라 아예 탱크톱을 걸치고 있다. 풍선만한 가슴을 양옆으로 자랑스레 흔들며 웃고 떠들며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낚시. 그렇다. 봉구 일행은 지금 여름 햇살을 보며 뭉게구름이 어른거리는 호수의 물고기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낚싯대를 길게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봉구 말대로 투망으로 잡는 거다.
언제 일일이 기다리며 잡겠냐? 봉구 말대로 청주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한적한 대학캠퍼스를 찾아온 것이다. 걸어서? 아니. 차를 그것도 밖에서 들여다봐도 안이 전혀 보이지 않을 봉고차다. 물론 차적 불명의 차다. 그러니까 슬쩍 빌린 것이다. 조금 후, 어쩌면 당장이라도 유석과 춘식에게 크나큰 기쁨을 줄 것이다.
아무런 소문 한 자락, 뉴스 한 줄 없이 10여 일이 지나자 다시 봉구가 둘을 부른 것이다. 둘은 주인을 따르는 충견처럼 조르르 봉구에게 달려갔다.
“어때 봤지? 확실히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꺼야. 돈도 여자도 다”
“맞아, 봉구 말이 진실이야. 난 봉구 너만 따르겠어.”
유석이 맞장구치자 춘식도 한 술 더 떠 고맙다, 는 말까지 하며 봉구를 따랐다.
요즘은 대학교가 이렇게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행운이다. 시내버스는 고사하고 시외버스나 통학 관광버스도 때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한 두 정거장 걸어가 다른 버스를 타야하는 것이다. 봉구 일행은 그 때를 노리고 있었다. 정 없으면 그냥 나꿔채자는 유석은 봉구에게 ‘다 된 밥에 코풀지 말고 국으로 가만있어. 그래야 중이나 가지’ 핀잔만 들었다. 재수 없으면 걸린다는 것이 봉구의 철칙이다. 한번 용코로 걸리면 줄줄이 엮여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봉구다. 아까운 청춘을 또 썩힐 순 없는 것이다.
“은혜야 같이 가”
“왜 너도 그만 가려고”
“글쎄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영 안 되네.”
“계집애, 너 데이트 있구나. 좋겠다.”
유경은 은혜를 보다 멀리 다가오는 버스를 보며
“애, 놓치겠다. 빨리 가자. 저거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
뛸 듯 빠른 걸음으로 둘이 정류장으로 가는 모습을 멀리서 본 봉구.
“야, 보이냐? 저기 저 두 년. 청바지 차림 하나와 연분홍 스커트를 입은 두 년, 말이야. 보여 안 보여?”
“아 저기. 쌈쌈한데. 저 년 궁둥이 좀 봐라. 아담하면서 동그란 게 쌕 꽤나 쓰겠다. 엎어놓고 때리면 꿀맛이겠어.”
유석이 대꾸한 여자는 청바지가 터질 것 같은,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실올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둔부와 바지였다. 용케 실밥이 안 터지고 버티는 게 신기했다. 민소매 셔츠차림의 상체 역시 선이 고운 가슴 그 자체였다. 특히 긴 생머리가 탐스러웠다.
“옆에 있는 년이 더 죽인다야. 저 날씬한 다리하며 흐미”
춘식의 눈길은 무릎까지 내려온 연분홍스커트를 떠나지 못했다. 다리 맨살이며 날렵한 발목과 슬리퍼에 걸친 하얀 발 특히 뒤꿈치의 신발 끈 자국이 감동영화의 한 장면으로 박혔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눈을 감고 그 다리와 맨발을 핥은 꿈에 잠겼겠지만 오늘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벌써 입맛을 다신 춘식이다.
봉구 일행에게는 운이 좋았던 탓일까. 아니면 저 여자들이 운이 없었던 것일까. 버스를 놓친 둘은 오후가 기울어가는 시각, 시계를 보며 조바심치는 걸로 봐 약속이 있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에 늦은 것 같았다. 둘이 헐레벌떡 뛰었지만 이미 3분전에 버스는 기다리던 한 무리 학생들을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다 싣고 떠나 버렸다. 지금은 둘만 남았다.
“야, 빨리 몰아. 목적지로‘
유석은 토요일 오후 드라이브에 나서는 사람처럼 휘파람을 불며 포장도로를 달렸다. 시골 풍경이 한가로웠다. 녹색의 나뭇잎까지 바람에 한들거린 오후다.
“됐어. 스톱.”
봉구는 차가 멈춰 서자 문을 열고 둘을 불렀다.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태워줄까요? 싫어요?’ 허접 같은 말로 짧은 시간 그녀들을 지체하게 만든 것이 봉구의 역할이었다. 둘은 한발 뒤로 물러서며 주위부터 먼저 살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하는 걱정 때문에. 그러나 걱정은 항상 현실이다. 악몽도 현실이며 염려도 피할 수 없는 우리 일이 아니던가.
덩치가 큰 춘식은 앞문을 슬며시 열고 벌써 그들 뒤에 서 있었다. 봉구의 불량스런 태도에 잠깐 경계심을 갖는 순간, 그 둘은 뒤를 보지 못했다.
‘악!’ 청바지가 먼저 몸을 앞으로 쏠리면서 겁먹은 외침을 질렀다. 스커트도 마찬가지다. 치마 매무새를 차리기도 전에 앞에서 머리채를 낚아챈 손길에 몸이 붕 뜨듯 차안으로 던져졌다.
“왜 이래요? 소리 지르겠어요? 사람 살려”
“미친년들. 이거 보여? 세상 끝마치고 싶어 환장했으면 멋대로 하라고. 흐흐흐”
봉구는 벌써 전기충격기를 꺼내들고 스커트 입은 년의 허벅지를 꼭꼭 눌렀다. 유석이 투자한 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한번 충격을 주면 그대로 뻗었다. 실험을 충분히 한 결과기 때문에 걱정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 동네 똥개를 대상으로 했지만. 개도 나자빠진데 사람 따위야.
“한방 먹여줄까? 이 년아. 오줌을 질질 흘리며 기고 싶어 난리야 난리는. 네년도 마찬가지야. 젖통에 한방 쏴줄까? 뜨거운 맛을 봐야 아가리를 닥치겠어, 응? 젖통을 튀김으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 이 년아”
역시 봉구는 가락이 있다. 인상을 쓰면서 나직이 몇 마디하자 두 년은 입속에서 웅얼거리기만 했다. 마치 어린 아기가 말을 할 수 없을 때처럼.
“이봐 아가씨들. 조용히 있으면 곧 끝나. 만약 대가리를 들거나 발가락하나 옴찍거리면 그때는 이걸로 그어버린다.”
봉구의 손에 들린 사시미 칼은 보기에도 시퍼렇다. 피부에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날카로운 칼날이다. 울상인 청바지가 먼저 대가리를 바닥에 대자 스커트 입은 년도 청바지 옆에 몸을 기댔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아니 뒷몸을 보이고 엎드려 있는 두 년은 정말 보기에 좋았다.
흐느끼는 소리가 그래도 들리자 봉구는 사시미를 들이밀며 청바지의 히프를 톡톡 쳤다.
“네 년이 지금 소리를 냈나?”
“아니요. 아니에요”
“아니면 밖이야. 웃기는 군. 그럼 네년이 아가리를 놀렸어?”
스커트의 드러난 맨다리에 칼등을 대자 다리를 오돌돌 떨던 스커트 년도 얼굴을 흔들며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아마 경황이 없을 것이다. 훤한 대낮에 이렇게 좁은 차안에 처박힌 현실이 잠깐 더위로 조는 꿈인 듯 했다.
“아가씨들. 잘 들어. 난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거든. 조금이라도 소리가 들리면 꼭지가 홱 도니까 알아서 해. 꼭지가 돌면 어떠하냐고? 각을 뜬다 년들아. 각이 뭔지 알아? 머리가 돌 같아서 친절하게 해주지. 이 부드러운 살을 예쁘게 조각조각 떠주는 거야”
바들바들 떠는 연분홍 스커트 여자애의 종아리와 뒤꿈치가 춘식의 눈을 끌었다. 상당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발이다. 그리 길쭉하지 않으면서도 통통한 발은 폭 역시 적당했다. 너무 뭉툭한 모양이나 여윈 발은 지독히도 싫어했다. 지금 보이는 저런 모양의 발은 솔직히 두 손에 받들어 숭배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실핏줄이 약하게 불거진 발등하며 세포들이 터질 듯 모여 팽팽하게 피부를 긴장시켜주는 탄력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네가 이 년들을 묶어 저 관에다 담아. 꽉꽉 눌러 담으면 두 년 정도는 들어갈 거야. 안 들어가면 잘라버려”
관이란 게 다름 아니라 며칠 전부터 봉구 놈이 뚝딱거려 나무 판대기로 만든 상자 같은 것이다. 길이가 1미터 30정도, 폭이 반 미터 정도로 한 사람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뚜껑까지 있어 넣고 닫아두면 아마 꼼짝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혹시 보더라도 상자로 보지 다르게는 보지 않을 것이다.
“이 년들아 자르란 말 들었지? 빨리 빨리 들어가 바짝 웅크려. 아가리는 절대 개방하지 말 것. 찍소리라도 나면 아가리부터 잘라내 버릴 테니까. 니 년부터 들어가”
청바지 입은 년이 네발로 기어 뒷자리로 먼저 갔다. 큰 사과 상자 같은 게 놓여 있었다. 아마 여기로 들어가란 말이겠지, 하며 엉금엉금 기어 다리를 구부려 모로 누웠다. 셔츠 밖으로 솟아난 젖통이 정말 좆 꼴리게 만들었다.
“야, 이거 먼저 보지나 까보는 건데. 이년 들은 저번 영계들과는 달리 아주 잘 익었을 것 같은데......”
“기다려. 급하게 할 필요 없어. 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하자고. 알았지? 이번에는 시간도 많고 좋잖아?”
“그러지 뭐. 난 이 년부터 먼저 먹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유석은 꽃무늬 셔츠의 가슴을 더듬으며 입술을 맞댈 듯 가까이 대고 무슨 음식을 먹고 싶다는 듯 씨부러대자 생머리가 길어 보기 좋은 여자는 겁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숨겼다. 물 빠진 청바지 아래로 언뜻 보이는 샌들에 시선을 빼앗긴 춘식은 오늘 저 샌들을 품고 자고 싶다는 생각과 또 갸름한 갈색의 발을 빈틈없이 핥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이 년은 왜 이리 무거워.”
춘식이 손을 잡아 몸을 반쯤 일으킨 스커트는 뒤로 가기 싫어한 몸짓으로 버티려고 했다.
끌려가면 무엇이 기다릴 것인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 남자들은 철저히 자신들을 유린할 것이다. 원하지 않은 섹스가 무엇인가? 그것은 강간 아닌가. 그딴 추한 짓은 정말 생각도 하기 싫었던 것이다.
‘캬악!’ 고개를 쳐들며 갑자기 비명을 지른 스커트다. 얇은 블라우스 위로 충격기를 대버린 봉구였다. 얼마나 뜨겁고 놀랐던지 몸을 소스라치게 떨다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하며 힘없이 무너졌다. 마치 모래로 만든 조각품처럼.
기절한 스커트를 끄잡아 뒤에 있는 유석에게 건네자 물건을 던지듯 청바지 옆으로 구겨 넣었다. 구부린 자세로 둘이 모로 눕자 상자의 크기가 딱 맞았다. 뚜껑을 덮자 싸한 두려움이 막힌 상자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났다.
“흑, 흑, 어떻게 해”
청바지 년은 무엇이 무서운지 달달 떨면서 울음을 삼켰다.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저러다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야 이 년들아 거기다 쉬하지 마. 만약 오줌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면 이 담뱃불을 꽂아버릴 테니까. 아마 그러면 영원히 놈씨 맛을 볼 수 없을 걸. 낄낄낄”
꽃무늬 셔츠에 물 빠진 청바지를 입은 그야말로 잘 빠진 고양이 같은 년이 엉덩이에 힘을 주는 소리가 들렸다. 담뱃불 운운 하는 소리에 울음까지 뚝 그친 걸로 봐 잔뜩 겁먹은 게 분명했다.
“요즘 년들은 깡다구도 없다니까. 차라리 구멍을 줬으면 줬지 얼굴에 상처 좀 난 걸 뭐 대단한 것처럼 난리들이라니까. 미친년들. 넨 년들도 그래?”
뒤를 돌아보며 봉구가 소리치자 울음기가 묻어난 소리로 웅, 웅, 거렸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흐윽”
“살고 싶단 말이지. 그럼 조용히 박혀 있어. 니 년들 두 발로 걸어 나가게 해줄 테니까. 알았냐?”
“살려만 주세요, 흑흑, 아, 어떡해”
“자 빨리 가자. 혹시 본 놈들 있나 둘러봐. 아무도 없어? 좋아 가자”
여름이 익어가는 옥수수 길을 따라 봉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적한 농촌 길가에는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옥수수만이 이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시내를 가로지른 봉고는 다시 빈 도심의 한 공간에 있는 세차장으로 모습을 감췄다. 누가 보더라도 세차를 하려고 막 들어가는 모습으로 볼 뿐이지 그 안에 누가 있는지 상자가 실려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어디 보자 이것이 어느 년 것이던가. 그 청바지 입은 년 꺼지. 뭐가 들어있나 볼까. 유석이 넌 휴대폰 잘 챙겼지. 저번에도 내가 말했잖아. 항상 먼저 휴대폰부터 챙기라고. 저년들은 대가리가 비어도 그런 것은 빈틈없이 한다니까”
저번 일이란 게 바로 어린 영계들을 데리고 재미 본 것을 말함이다. 유석은 그때 일이 생각나자 좆이 막 꼴렸다. 덜 익은 풋사과를 한 입 베어 문 싱싱함이 아랫도리에서 타올랐다.
“물론이지. 여기 있어, 전원은 아예 꺼버렸고 혹시 몰라 밧데리까지 떼어 놓았지. 안심해. 누가 좆나게 불러도 대답은 없을 테니까”
“잘 했어. 그건 그렇고 어디 이년들 가방이나 볼까. 근데 봉구는 어디 갔냐?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그 새낀 아마 저 쪽 방에 있을 걸. 보나마나 뻔하지 뭐”
유석은 관 같은 상자를 통째로 집안으로 옮기자마자 봉구 새끼가 거들며 거기서 감시하고 있겠다고 할 때부터 벌써 눈치를 챘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스커트 입은 년을 어깨와 다리를 잡아 끄집어 낼 때도 춘식이 놈의 눈길은 굽이 낮은 하얀 샌들에서 떠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혀를 내밀어 핥을 판이었다. 유석의 손이 스커트 밑을 헤집을 때 춘식은 흰빛의 샌들을 잡고 어루만지며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던 거다.
“이년은 뭐 이리 지저분해. 가방 안이 온통 잡스러운 것뿐이야. 이건 뭐지?”
봉구가 손에 들어 보이자 유석은 얼굴을 가까이 하며 뭐? 하는 표정으로 물건을 받아들었다. 가방 속은 화장도구, 수첩, 필기구 따위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아마 잡아챌 때 뒤엉킨 것이리라. 그런데 유석의 눈에 띈 것은 하얀색의 캡슐이었다.
“이거, 피임약 아냐? 이년 봐라. 아예 준비를 하고 다니는구만. 날 잡아줍쇼, 하는 거나 똑 같네 뭐”
“이거 그 긴 생머리 년 꺼지. 생긴 게 엉덩이 꽤나 돌릴 것 같던데”
“이런 년들은 아무나 해도 괜찮을 거야. 구멍이 널널하지나 않을까? 꽉 죄이는 맛이 있어야 죽이는데.....”
“구멍이 크면 어때. 좆대가리가 더 크면 돼지. 낄낄낄”
봉구는 뭐가 신나는지 피임약을 멀리 던지고 다른 백을 들었다. 아이보리 색깔의 백은 핸드백이라기보다는 어깨에 둘러 맨 제법 큰 백이었다. 그 안에도 책이나 노트, 수첩, 작은 가방이 뒤섞여있다. 작은 가방을 열자 학생증과 주민증, 만원권짜리가 몇 장 있었다.
이름 유 은혜. 불문과 4학년. 나이는 1980년생이니까 22살이었다.
“야 이년 꺼도 봐라. 먹어도 이름이나 알고 먹어야지”
유석이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작은 지갑을 꺼내 학생증을 펼쳤다.
“이름은 심 유경. 유경이라 이름이 예쁜데 그래. 나이는 똑 같네. 과도 같은 불문관데. 이년들은 색 쓸 때도 불란서말로 할까? 궁금하네.”
봉구는 아직도 덜덜 떨고 있는 꽃무늬 티의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털이 짧은 강아지의 배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목을 치기 전 닭을 잡았을 때의 그것이었다. 뭉클하면서도 따뜻한 감촉이 꽃무늬 티에서 느꼈다. 물이 빠진 청바지는 허벅지의 탄력을 이기지 못해 곧 터질 듯 했다. 팡팡한 볼륨은 다리까지 이어지다 발목에서 통이 넓어졌다. 다리를 옆으로 누이고 앉아있던 꽃무늬는 우락부락한 남자가 쳐다보자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불안해 한 꼴이다. 손은 뒤로 돌려 묶어두었다. 다리까지 묶으려다 도망갈 데도 없어 그냥 두었다. 스커트 입은 년 역시 손목을 뒤로 돌려 묶고 방 한쪽에 던져 놓았다.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한 스커트는 아마 깨어나면 놀라서 자빠질 것이다. 사방은 꽉 막혀있지 침대와 의자하나 달랑 있는 방은 벽에 각가지 여자들이 발가벗은 채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쳐다보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아주 어려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는 지도 모를 정도로 방은 막혀 있었다. 형광등이 걸려 있는 천장에는 큰 대못이 박힌 막대기가 걸려 있고 그 대못에는 긴 줄들이 걸려 있다.
심 유경은 그런 줄을 보고 겁에 질렸다. 사람을 묶는 데 쓰는 게 틀림없었다. 눈을 감자 고인 눈물이 주룩 흘렀다. 연잎에 고인 이슬방울이 방울져 떨어지는 것 같다. 깨끗한 얼굴을 타고 눈물방울이 흐르자 춘식은 순간 그 방울을 맛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깊은 산 속 샘물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겹쳤다. 겁에 질린 얼굴의 여자, 유경은 옆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은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실내였다.
“왜 울지? 우는 눈이 예쁘다는 걸 보여주려고 하나? 정말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가 예쁘군. 저 친구들은 그런 예쁜 눈을 보면 파내서 갖고 싶어 해. 무서운 놈들이거든.”
마치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듯 유경의 긴 생머리를 쓰다듬었다. 징그러운 느낌, 유경은 어깨를 움츠리며 손을 들어 남자를 내치려했지만 너무 꽉 묶인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옷은 입혀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발가벗긴 몸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했다. 이 사람들은 혹시? 유경은 돈을 노리고 유괴나 납치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관 같은 상자 속에 들어가 쪼그려 누워있을 때만해도 이런 장소로 납치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행이라면 지금 바로 앞의 남자는 아까 그들처럼 상스럽지는 않다는 걸까. 잘 하면 몸성히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 아저씨. 보내주세요. 흑”
말끝마다 눈물을 삼키는 유경을 보며 피곤함을 느낀 춘식은,
“보내주다니 어디로. 지금 당장 어디로 보내달란 말이지? 이 땅 속으로”
바닥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자 바닥에는 큰 틀 같은 게 보였다. 손잡이를 열면 문이 열리는 그런 틀이었다.
“여기는 고집을 너무 피어 피곤하게 하는 여자들을 그냥 보내버린 곳이거든. 씨잘 데 없이 자존심을 세우거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여자들은 이곳에서 며칠이고 보내야 돼.”
춘식의 말은 유경의 입을 닫는 데 많은 시간을 드릴 필요가 없었다. 배운 년들이라 똑똑한 건지 모르겠지만......,
“난 너를 처음 멀리 봤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어. 걸을 때마다 살짝살짝 드러난 이 청바지 밑의 잘 그을린 발이 너무나 만지고 싶었거든. 분홍색과 갈색이 잘 섞인 듯한 이 발은 너무 귀엽기도 하고 앙증맞기도 했어. 지금 보아도 참 예뻐”
춘식은 귀중한 보물을 손에 들고 어쩔 줄 모른 사람처럼 유경의 통이 넓은 청바지를 조금 밀어 올려 슬리퍼 같은 샌들을 쥐고는 들어 올렸다. 은색의 발찌가 묘한 흥분을 주는 왼발이다. 발찌를 볼 때마다 그는 여자들이 자신을 구속해주기 바라는 마음의 표식 같다고 생각했다.
발목은 가느다랗지만 발목에서 발등을 따라 발끝까지는 도톰한 살집이 부드럽게 손에 안겼다. 신발을 벗기는 것은 더 뒤다. 지금은 아니다. 땀에 푹 젖은 발의 은은한 향기를 마시기 전에 먼저 충분한 감상을 하는 것이 춘식의 습관이다. 제의를 올리는 사제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검은 보석으로 빚어놓은 왼발을 들고 눈에 맞추는 춘식이다. 하얀 샌들에 잠긴 구리 빛 살갗이 마치 하얀 콘에 담긴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다. 춘식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맛보듯 유경의 구리빛 발을 들어 뺨에 비비다 입을 맞췄다. 물컹, 하는 살집이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많이 걸어 다녔는지 땀이 촉촉하게 밴 발이다. 불그레한 발등과 어린아이 뺨처럼 발그레한 발바닥이 샌들 사이로 비쳤다.
샌들 옆으로 보이는 발선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두껍거나 아니면 너무 얇은 여자들은 애써 외면하곤 했다. 바로 이런 두께의 발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발치에서부터 시작한 고운 선은 샌들 바닥을 따라 발 앞부분 신발의 걸림 줄을 지나 발끝에서 멈췄다. 끈에 눌린 발간 자국마저도 자극을 주었다. 발끝엔 분홍빛 페디큐어가 다섯 송이 장미꽃처럼 피어있다. 그는 장미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바로 이런 아름다운 발가락이 떠올랐다. 진한 체취가 여자의 모아진 발가락에서 흘러나왔다.
유경은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표정으로 눈을 떠 남자를 봤다. 청바지 통을 잡을 때 이제 당하는 구나, 생각했는데 이 남자는 옷을 벗기지 않고 발목을 소중한 물건처럼 바치며 입술에 댄 것이다. 그러나 유경은 순간 당황해서 발을 빼내려고 했다. 남자가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움이 큰 것이다.
“........”
입을 다문 채 유경을 쳐다보는 춘식은 발목을 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아얏. 아, 아파요. 꽉 잡지 마세요.”
“너 아무래도 이 밑으로 들어가야겠다. 저 친구들은 앞뒤 가리지 않은 놈들이거든. 이 밑이 어떻게 생겼나 그렇게 궁금해?”
생머리를 옆으로 설레설레 흔드는 유경의 발을 내려놓으며 아직도 쓰러져 있는 친구의 오른발을 들어 올리며 그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이 아래는 작은 감방과 같은 곳이야. 목을 매달린 채 앉지도 못하고 서있어야 해. 똥, 오줌도 서 있는 그 자세로 봐야 하거든. 생각해 봐. 꼴이 어떻겠어. 죽고 싶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돼. 그럼 목에 감긴 줄이 편안함을 주지. 대신 네 몸뚱아리는 쥐들이 뜯어먹고 벌레들의 놀이터가 되겠지. 우린 이 위에서 이 친구만 데리고 놀면 되니까. 잘 생각해봐.”
음성은 낮았지만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 있어 유경의 여린 피부를 가르고도 남았다. 말을 마친 남자는 친구인 은혜, 가엽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누워 있는 그녀의 한 발을 들며 골동품을 감상하듯 봤다.
“난 이렇게 살집이 포동포동한 발을 매우 좋아하지. 기다랗거나 마른 발은 줘도 싫어. 안심해. 네 꺼도 마음에 드니까. 어디 두 발을 들어볼까?”
역시 낮은 목소리. 그가 가리키는 곳은 자신의 얼굴이다. 얼굴에 대란 말인가? 유경은 머뭇거렸다.
“난 가만 있을 테니까 네가 내밀어 봐. 그러면 아무 일 없을 거야. 여기서 죽으면 누가 그 죽음을 슬퍼하겠니. 그렇지?”
“살려주세요, 흑 흑, 우릴 보내주실 건가요? 무서워요.”
“하기 나름”
그리고 말을 끊자 유경은 두려운 표정으로 등으로 벽에 기대면서 두 발을 들었다. 신발을 벗을까 하다 그대로 두 발을 들어 남자의 시선에 맞췄다. 샌들의 뒤는 고정 발목 띠가 없어 발치에서 떨어졌다.
“이렇게요?"
“그래”
샌들 밖으로 조금 드러난 분홍색 발바닥이 그의 혀를 이끌었다. 용케도 벗겨지지 않은 샌들은 갈색의 발에 걸쳐 건들거렸다. 여자들은 쉽게 벗어질 것 같은데도 신기하게 잘 벗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궁금하기도 한 춘식이다.
신발 가로 드러난 발바닥의 선을 따라 혀로 핥았다. 안쪽의 옴폭한 발선과 바깥쪽의 기다란 발선을 입술과 혀로 훑은 춘식은 샌들을 발치부터 벗겨내 두 손에 들고 샌들의 검정 바닥을 얼굴을 박고 여운이 남아있는 향기를 코로 모았다.
‘아! 이 냄새. 이 향기를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 건가? 가죽내음에 겉들인 이 예쁜 계집아이의 발 내음.’
오히려 민망한 얼굴이 된 유경은 두 발을 얼굴 높이 든 채 남자를 보다 눈을 감아버렸다. 사실 그녀는 발을 잘 가꾼 편이다. 손질을 잘 해준 나무가 깔끔한 것처럼 그녀의 발 역시 깔끔했다.
발바닥으로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도록 혀끝이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왜 이런 향기를 맡으면 취할까? 깊은 냄새 탓일까 아니면......“
동그란 뒤꿈치의 살을 만지며 부드러움을 맛본 춘식은 사과를 덥석 깨물듯 베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계란이 터질 때처럼 흰자위 속의 노른자가 터질듯 했다.
“아얏! 물지 마세요. 아, 아파요”
셔츠만 입은 남자가 뒤꿈치를 깨물자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팠다. 억센 손아귀에서 발을 빼내기는 불가능했다.
“아파? 많이? 그래도 참아. 나의 기쁨을 방해하지 마.”
“흑, 흑, 아파요. 그냥 만지면 안돼요? 가만히 있을 게요”
두 발을 모아 얼굴 높이로 든 유경이 아픈 표정을 짓자 춘식은 이빨 자국이 뒤꿈치에 남은 왼발의 분홍빛 발바닥을 혀로 핥았다. 갸름한 발이다. 폭이 적당히 보기 좋은 발바닥의 안쪽 쏙 들어간 곳을 핥으며 발끝, 다섯 개의 발가락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발끝까지 살짝살짝 핥았다.
“발로 해봤니? 풋잡이라고 한데 해본 적 있어?”
고개를 가로 젓자
“지금 내 이 아래가 거의 터질 지경이거든. 어떻게 해야 할까?”
“모, 몰라요”
“몰라? 모르면 배워야지”
반바지는 쉽게 내려지고 체크무늬 박스 팬티까지 앉은 채로 벗어내자 거기 한 가운데 불그스름한 살덩이가 꿈틀거렸다. 먹이를 앞에 둔 맹수의 혀다.
“하, 하지 말아주세요. 시, 싫어요.”
앙탈을 무시하며 춘식은 유경의 두 발을 힘줘 붙잡고는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불끈 솟구친 좆은 송곳처럼 유경의 두 발바닥 사이를 뚫었다. 발 안쪽 맞닿은 여린 살을 마찰시키며 춘식의 껍질이 벗어진 좆대가리가 유경의 두 눈에 정지화면처럼 새겨졌다. 간지러운 느낌은 없었지만 얼굴이 불거진 것을 보면 수치심에 어쩔 줄 모른 표정이다. ‘으음.......’ 긴 신음소리를 내며 발바닥을 문지르던 남자는 다시 두 발을 모아 꽉 죄고는 그 사이로 용두질을 거세게 했다.
흥분! 그렇다. 춘식은 그 뜨거운 흥분을 아랫도리부터 뜨겁게 태워 올렸다.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진 좆이다.
‘하아, 하아. 쫄깃한 이 년의 두 발이 정말 나를 감싸는 것 같군’
“눈을 떠. 이 년아. 핏발 선 이 아저씨의 좆님을 봐란 말이야”
흥분을 하면 겉잡을 수 없이 상욕을 쏟아 내뿜은 그다. 모든 겉치레가 사라지고 알몸의 상태로 변해버린 것이다.
“어때? 내 좆님이 피어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아, 응?”
유경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느낌이다. 느낌 보다는 담담하다는 편이 맞을까? 두 발에 눌어붙는 칙칙한 남자의 성기가 징그럽기만 했다. 남자를 모른 유경은 아니지만 바로 눈앞에서 앞뒤로 움직이는 물건은 검으튀튀한 벌레같이 흉측스럽기만 했다.
“처음은 발이지만 한번 스타트하면 쏜살 같이 뛰어가는 경주마처럼 네 년의 모든 구멍을 짓밟아 버리고 말 걸. 이 년도 마찬가지지. 훗, 훗”
신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뿜은 춘식은 팔을 뻗혀 은혜의 한 발을 들었다. 정말 통통한 살집이 잘 익은 과일이었다. 발등으로 푹신하게 잡힌 살은 부드러운 그리고 손질이 잘된 정육처럼 식욕을 돋우었다. 유경의 두 발 사이로 좆을 비비며 은혜의 한 발을 든 춘식은 입으로 가져가 이빨로 슬리퍼 같은 샌들을 벗겼다. 진득한 가죽냄새가 코끝에 풍겼다. 톡, 쏘는 향기는 그의 좆을 더 거세게 부풀어 올렸다. 싸기 직전이다. 뇌를 때리는 충동은 은혜의 뒤꿈치에 이빨을 들이대게 만들었다.
이빨 하니까 춘식은 요즘 들어 어금니를 중심으로 간질간질 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였다. 아마 얼마 전인가 공원에서 희멀건 다리가 예쁜 계집아이의 발을 핥으면서 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래도 심하지는 않았었다. 더 정확히 짚어보면 그 날, 야간학교 덮칠 때 스타킹에 쌓인 매혹적인 다리를 입술로 비빌 때 일 것이다. 자신의 이빨이 더 강해지고 더 날카로워 진 것 같았다.
“끄응!”
그때까지도 정신을 잃고 있던 은혜는 발에 강한 통증을 느끼자 짧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여름 낮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듯 모든 게 누르스름했다. 어찔한 머리를 손으로 잡으려하다 손이 뒤로 묶인 걸 알고는 ‘어?’ 하는 표정이다.
“이제 깨어났군.”
“어, 어디에요? 누구에요?”
박 봉구(26)
이 춘식(25)
김 유석(26)
심 유경(24) 대학생
윤 은혜(24) 대학생
6부. 7월은 춘식을 들뜨게 한다.
계절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감촉은 다르다. 눈이나 비, 꽃으로 자연현상과 교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춘식은 사람들, 아니 여자들의 드러난 다리와 예쁜 발로 계절을 교감하곤 한다. 발목까지 늘어뜨린 치마나 무릎 바로 아래까지 내려온 스커트 또는 아예 바지로 하체를 가리는 겨울과 가을은 그래서 싫어한다. 특히 겨울 검은 가죽 부츠로 다리를 꽁꽁 가린 차림새는 계절을 원망하기도 했다. 간혹 구두를 신어도 살갗을 다 가린 양말 따위는 정말 싫었다. 아무리 추워도 그나마 질감이 두꺼운 스타킹 차림은 조금 나았다. 그것도 검정색은 겨울이란 우중충한 느낌이 들어 싫기만 했다. 차라리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화사한 꽃무늬 하얀 스타킹이나 살색의 무늬 있는 스타킹이 더 나았다.
그러고 보면 지금 차창 밖으로 지나친 풍경은 너무 좋아 환상이었다. 여름 햇살은 계집애들에게 두꺼운 옷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에 뜨이는 어떤 년들이나 반팔 아니면 어깨를 훤히 드러낸 티셔츠가 아닌가. 브라에 땀이라도 차는지 어떤 년들은 브라가 아니라 아예 탱크톱을 걸치고 있다. 풍선만한 가슴을 양옆으로 자랑스레 흔들며 웃고 떠들며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낚시. 그렇다. 봉구 일행은 지금 여름 햇살을 보며 뭉게구름이 어른거리는 호수의 물고기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낚싯대를 길게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봉구 말대로 투망으로 잡는 거다.
언제 일일이 기다리며 잡겠냐? 봉구 말대로 청주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한적한 대학캠퍼스를 찾아온 것이다. 걸어서? 아니. 차를 그것도 밖에서 들여다봐도 안이 전혀 보이지 않을 봉고차다. 물론 차적 불명의 차다. 그러니까 슬쩍 빌린 것이다. 조금 후, 어쩌면 당장이라도 유석과 춘식에게 크나큰 기쁨을 줄 것이다.
아무런 소문 한 자락, 뉴스 한 줄 없이 10여 일이 지나자 다시 봉구가 둘을 부른 것이다. 둘은 주인을 따르는 충견처럼 조르르 봉구에게 달려갔다.
“어때 봤지? 확실히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꺼야. 돈도 여자도 다”
“맞아, 봉구 말이 진실이야. 난 봉구 너만 따르겠어.”
유석이 맞장구치자 춘식도 한 술 더 떠 고맙다, 는 말까지 하며 봉구를 따랐다.
요즘은 대학교가 이렇게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행운이다. 시내버스는 고사하고 시외버스나 통학 관광버스도 때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한 두 정거장 걸어가 다른 버스를 타야하는 것이다. 봉구 일행은 그 때를 노리고 있었다. 정 없으면 그냥 나꿔채자는 유석은 봉구에게 ‘다 된 밥에 코풀지 말고 국으로 가만있어. 그래야 중이나 가지’ 핀잔만 들었다. 재수 없으면 걸린다는 것이 봉구의 철칙이다. 한번 용코로 걸리면 줄줄이 엮여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봉구다. 아까운 청춘을 또 썩힐 순 없는 것이다.
“은혜야 같이 가”
“왜 너도 그만 가려고”
“글쎄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영 안 되네.”
“계집애, 너 데이트 있구나. 좋겠다.”
유경은 은혜를 보다 멀리 다가오는 버스를 보며
“애, 놓치겠다. 빨리 가자. 저거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
뛸 듯 빠른 걸음으로 둘이 정류장으로 가는 모습을 멀리서 본 봉구.
“야, 보이냐? 저기 저 두 년. 청바지 차림 하나와 연분홍 스커트를 입은 두 년, 말이야. 보여 안 보여?”
“아 저기. 쌈쌈한데. 저 년 궁둥이 좀 봐라. 아담하면서 동그란 게 쌕 꽤나 쓰겠다. 엎어놓고 때리면 꿀맛이겠어.”
유석이 대꾸한 여자는 청바지가 터질 것 같은,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실올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둔부와 바지였다. 용케 실밥이 안 터지고 버티는 게 신기했다. 민소매 셔츠차림의 상체 역시 선이 고운 가슴 그 자체였다. 특히 긴 생머리가 탐스러웠다.
“옆에 있는 년이 더 죽인다야. 저 날씬한 다리하며 흐미”
춘식의 눈길은 무릎까지 내려온 연분홍스커트를 떠나지 못했다. 다리 맨살이며 날렵한 발목과 슬리퍼에 걸친 하얀 발 특히 뒤꿈치의 신발 끈 자국이 감동영화의 한 장면으로 박혔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눈을 감고 그 다리와 맨발을 핥은 꿈에 잠겼겠지만 오늘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벌써 입맛을 다신 춘식이다.
봉구 일행에게는 운이 좋았던 탓일까. 아니면 저 여자들이 운이 없었던 것일까. 버스를 놓친 둘은 오후가 기울어가는 시각, 시계를 보며 조바심치는 걸로 봐 약속이 있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에 늦은 것 같았다. 둘이 헐레벌떡 뛰었지만 이미 3분전에 버스는 기다리던 한 무리 학생들을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다 싣고 떠나 버렸다. 지금은 둘만 남았다.
“야, 빨리 몰아. 목적지로‘
유석은 토요일 오후 드라이브에 나서는 사람처럼 휘파람을 불며 포장도로를 달렸다. 시골 풍경이 한가로웠다. 녹색의 나뭇잎까지 바람에 한들거린 오후다.
“됐어. 스톱.”
봉구는 차가 멈춰 서자 문을 열고 둘을 불렀다.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태워줄까요? 싫어요?’ 허접 같은 말로 짧은 시간 그녀들을 지체하게 만든 것이 봉구의 역할이었다. 둘은 한발 뒤로 물러서며 주위부터 먼저 살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하는 걱정 때문에. 그러나 걱정은 항상 현실이다. 악몽도 현실이며 염려도 피할 수 없는 우리 일이 아니던가.
덩치가 큰 춘식은 앞문을 슬며시 열고 벌써 그들 뒤에 서 있었다. 봉구의 불량스런 태도에 잠깐 경계심을 갖는 순간, 그 둘은 뒤를 보지 못했다.
‘악!’ 청바지가 먼저 몸을 앞으로 쏠리면서 겁먹은 외침을 질렀다. 스커트도 마찬가지다. 치마 매무새를 차리기도 전에 앞에서 머리채를 낚아챈 손길에 몸이 붕 뜨듯 차안으로 던져졌다.
“왜 이래요? 소리 지르겠어요? 사람 살려”
“미친년들. 이거 보여? 세상 끝마치고 싶어 환장했으면 멋대로 하라고. 흐흐흐”
봉구는 벌써 전기충격기를 꺼내들고 스커트 입은 년의 허벅지를 꼭꼭 눌렀다. 유석이 투자한 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한번 충격을 주면 그대로 뻗었다. 실험을 충분히 한 결과기 때문에 걱정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 동네 똥개를 대상으로 했지만. 개도 나자빠진데 사람 따위야.
“한방 먹여줄까? 이 년아. 오줌을 질질 흘리며 기고 싶어 난리야 난리는. 네년도 마찬가지야. 젖통에 한방 쏴줄까? 뜨거운 맛을 봐야 아가리를 닥치겠어, 응? 젖통을 튀김으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 이 년아”
역시 봉구는 가락이 있다. 인상을 쓰면서 나직이 몇 마디하자 두 년은 입속에서 웅얼거리기만 했다. 마치 어린 아기가 말을 할 수 없을 때처럼.
“이봐 아가씨들. 조용히 있으면 곧 끝나. 만약 대가리를 들거나 발가락하나 옴찍거리면 그때는 이걸로 그어버린다.”
봉구의 손에 들린 사시미 칼은 보기에도 시퍼렇다. 피부에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날카로운 칼날이다. 울상인 청바지가 먼저 대가리를 바닥에 대자 스커트 입은 년도 청바지 옆에 몸을 기댔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아니 뒷몸을 보이고 엎드려 있는 두 년은 정말 보기에 좋았다.
흐느끼는 소리가 그래도 들리자 봉구는 사시미를 들이밀며 청바지의 히프를 톡톡 쳤다.
“네 년이 지금 소리를 냈나?”
“아니요. 아니에요”
“아니면 밖이야. 웃기는 군. 그럼 네년이 아가리를 놀렸어?”
스커트의 드러난 맨다리에 칼등을 대자 다리를 오돌돌 떨던 스커트 년도 얼굴을 흔들며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아마 경황이 없을 것이다. 훤한 대낮에 이렇게 좁은 차안에 처박힌 현실이 잠깐 더위로 조는 꿈인 듯 했다.
“아가씨들. 잘 들어. 난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거든. 조금이라도 소리가 들리면 꼭지가 홱 도니까 알아서 해. 꼭지가 돌면 어떠하냐고? 각을 뜬다 년들아. 각이 뭔지 알아? 머리가 돌 같아서 친절하게 해주지. 이 부드러운 살을 예쁘게 조각조각 떠주는 거야”
바들바들 떠는 연분홍 스커트 여자애의 종아리와 뒤꿈치가 춘식의 눈을 끌었다. 상당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발이다. 그리 길쭉하지 않으면서도 통통한 발은 폭 역시 적당했다. 너무 뭉툭한 모양이나 여윈 발은 지독히도 싫어했다. 지금 보이는 저런 모양의 발은 솔직히 두 손에 받들어 숭배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실핏줄이 약하게 불거진 발등하며 세포들이 터질 듯 모여 팽팽하게 피부를 긴장시켜주는 탄력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네가 이 년들을 묶어 저 관에다 담아. 꽉꽉 눌러 담으면 두 년 정도는 들어갈 거야. 안 들어가면 잘라버려”
관이란 게 다름 아니라 며칠 전부터 봉구 놈이 뚝딱거려 나무 판대기로 만든 상자 같은 것이다. 길이가 1미터 30정도, 폭이 반 미터 정도로 한 사람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뚜껑까지 있어 넣고 닫아두면 아마 꼼짝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혹시 보더라도 상자로 보지 다르게는 보지 않을 것이다.
“이 년들아 자르란 말 들었지? 빨리 빨리 들어가 바짝 웅크려. 아가리는 절대 개방하지 말 것. 찍소리라도 나면 아가리부터 잘라내 버릴 테니까. 니 년부터 들어가”
청바지 입은 년이 네발로 기어 뒷자리로 먼저 갔다. 큰 사과 상자 같은 게 놓여 있었다. 아마 여기로 들어가란 말이겠지, 하며 엉금엉금 기어 다리를 구부려 모로 누웠다. 셔츠 밖으로 솟아난 젖통이 정말 좆 꼴리게 만들었다.
“야, 이거 먼저 보지나 까보는 건데. 이년 들은 저번 영계들과는 달리 아주 잘 익었을 것 같은데......”
“기다려. 급하게 할 필요 없어. 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하자고. 알았지? 이번에는 시간도 많고 좋잖아?”
“그러지 뭐. 난 이 년부터 먼저 먹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유석은 꽃무늬 셔츠의 가슴을 더듬으며 입술을 맞댈 듯 가까이 대고 무슨 음식을 먹고 싶다는 듯 씨부러대자 생머리가 길어 보기 좋은 여자는 겁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숨겼다. 물 빠진 청바지 아래로 언뜻 보이는 샌들에 시선을 빼앗긴 춘식은 오늘 저 샌들을 품고 자고 싶다는 생각과 또 갸름한 갈색의 발을 빈틈없이 핥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이 년은 왜 이리 무거워.”
춘식이 손을 잡아 몸을 반쯤 일으킨 스커트는 뒤로 가기 싫어한 몸짓으로 버티려고 했다.
끌려가면 무엇이 기다릴 것인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 남자들은 철저히 자신들을 유린할 것이다. 원하지 않은 섹스가 무엇인가? 그것은 강간 아닌가. 그딴 추한 짓은 정말 생각도 하기 싫었던 것이다.
‘캬악!’ 고개를 쳐들며 갑자기 비명을 지른 스커트다. 얇은 블라우스 위로 충격기를 대버린 봉구였다. 얼마나 뜨겁고 놀랐던지 몸을 소스라치게 떨다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하며 힘없이 무너졌다. 마치 모래로 만든 조각품처럼.
기절한 스커트를 끄잡아 뒤에 있는 유석에게 건네자 물건을 던지듯 청바지 옆으로 구겨 넣었다. 구부린 자세로 둘이 모로 눕자 상자의 크기가 딱 맞았다. 뚜껑을 덮자 싸한 두려움이 막힌 상자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났다.
“흑, 흑, 어떻게 해”
청바지 년은 무엇이 무서운지 달달 떨면서 울음을 삼켰다.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저러다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야 이 년들아 거기다 쉬하지 마. 만약 오줌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면 이 담뱃불을 꽂아버릴 테니까. 아마 그러면 영원히 놈씨 맛을 볼 수 없을 걸. 낄낄낄”
꽃무늬 셔츠에 물 빠진 청바지를 입은 그야말로 잘 빠진 고양이 같은 년이 엉덩이에 힘을 주는 소리가 들렸다. 담뱃불 운운 하는 소리에 울음까지 뚝 그친 걸로 봐 잔뜩 겁먹은 게 분명했다.
“요즘 년들은 깡다구도 없다니까. 차라리 구멍을 줬으면 줬지 얼굴에 상처 좀 난 걸 뭐 대단한 것처럼 난리들이라니까. 미친년들. 넨 년들도 그래?”
뒤를 돌아보며 봉구가 소리치자 울음기가 묻어난 소리로 웅, 웅, 거렸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흐윽”
“살고 싶단 말이지. 그럼 조용히 박혀 있어. 니 년들 두 발로 걸어 나가게 해줄 테니까. 알았냐?”
“살려만 주세요, 흑흑, 아, 어떡해”
“자 빨리 가자. 혹시 본 놈들 있나 둘러봐. 아무도 없어? 좋아 가자”
여름이 익어가는 옥수수 길을 따라 봉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적한 농촌 길가에는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옥수수만이 이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시내를 가로지른 봉고는 다시 빈 도심의 한 공간에 있는 세차장으로 모습을 감췄다. 누가 보더라도 세차를 하려고 막 들어가는 모습으로 볼 뿐이지 그 안에 누가 있는지 상자가 실려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어디 보자 이것이 어느 년 것이던가. 그 청바지 입은 년 꺼지. 뭐가 들어있나 볼까. 유석이 넌 휴대폰 잘 챙겼지. 저번에도 내가 말했잖아. 항상 먼저 휴대폰부터 챙기라고. 저년들은 대가리가 비어도 그런 것은 빈틈없이 한다니까”
저번 일이란 게 바로 어린 영계들을 데리고 재미 본 것을 말함이다. 유석은 그때 일이 생각나자 좆이 막 꼴렸다. 덜 익은 풋사과를 한 입 베어 문 싱싱함이 아랫도리에서 타올랐다.
“물론이지. 여기 있어, 전원은 아예 꺼버렸고 혹시 몰라 밧데리까지 떼어 놓았지. 안심해. 누가 좆나게 불러도 대답은 없을 테니까”
“잘 했어. 그건 그렇고 어디 이년들 가방이나 볼까. 근데 봉구는 어디 갔냐?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그 새낀 아마 저 쪽 방에 있을 걸. 보나마나 뻔하지 뭐”
유석은 관 같은 상자를 통째로 집안으로 옮기자마자 봉구 새끼가 거들며 거기서 감시하고 있겠다고 할 때부터 벌써 눈치를 챘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스커트 입은 년을 어깨와 다리를 잡아 끄집어 낼 때도 춘식이 놈의 눈길은 굽이 낮은 하얀 샌들에서 떠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혀를 내밀어 핥을 판이었다. 유석의 손이 스커트 밑을 헤집을 때 춘식은 흰빛의 샌들을 잡고 어루만지며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던 거다.
“이년은 뭐 이리 지저분해. 가방 안이 온통 잡스러운 것뿐이야. 이건 뭐지?”
봉구가 손에 들어 보이자 유석은 얼굴을 가까이 하며 뭐? 하는 표정으로 물건을 받아들었다. 가방 속은 화장도구, 수첩, 필기구 따위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아마 잡아챌 때 뒤엉킨 것이리라. 그런데 유석의 눈에 띈 것은 하얀색의 캡슐이었다.
“이거, 피임약 아냐? 이년 봐라. 아예 준비를 하고 다니는구만. 날 잡아줍쇼, 하는 거나 똑 같네 뭐”
“이거 그 긴 생머리 년 꺼지. 생긴 게 엉덩이 꽤나 돌릴 것 같던데”
“이런 년들은 아무나 해도 괜찮을 거야. 구멍이 널널하지나 않을까? 꽉 죄이는 맛이 있어야 죽이는데.....”
“구멍이 크면 어때. 좆대가리가 더 크면 돼지. 낄낄낄”
봉구는 뭐가 신나는지 피임약을 멀리 던지고 다른 백을 들었다. 아이보리 색깔의 백은 핸드백이라기보다는 어깨에 둘러 맨 제법 큰 백이었다. 그 안에도 책이나 노트, 수첩, 작은 가방이 뒤섞여있다. 작은 가방을 열자 학생증과 주민증, 만원권짜리가 몇 장 있었다.
이름 유 은혜. 불문과 4학년. 나이는 1980년생이니까 22살이었다.
“야 이년 꺼도 봐라. 먹어도 이름이나 알고 먹어야지”
유석이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작은 지갑을 꺼내 학생증을 펼쳤다.
“이름은 심 유경. 유경이라 이름이 예쁜데 그래. 나이는 똑 같네. 과도 같은 불문관데. 이년들은 색 쓸 때도 불란서말로 할까? 궁금하네.”
봉구는 아직도 덜덜 떨고 있는 꽃무늬 티의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털이 짧은 강아지의 배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목을 치기 전 닭을 잡았을 때의 그것이었다. 뭉클하면서도 따뜻한 감촉이 꽃무늬 티에서 느꼈다. 물이 빠진 청바지는 허벅지의 탄력을 이기지 못해 곧 터질 듯 했다. 팡팡한 볼륨은 다리까지 이어지다 발목에서 통이 넓어졌다. 다리를 옆으로 누이고 앉아있던 꽃무늬는 우락부락한 남자가 쳐다보자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불안해 한 꼴이다. 손은 뒤로 돌려 묶어두었다. 다리까지 묶으려다 도망갈 데도 없어 그냥 두었다. 스커트 입은 년 역시 손목을 뒤로 돌려 묶고 방 한쪽에 던져 놓았다.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한 스커트는 아마 깨어나면 놀라서 자빠질 것이다. 사방은 꽉 막혀있지 침대와 의자하나 달랑 있는 방은 벽에 각가지 여자들이 발가벗은 채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쳐다보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아주 어려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는 지도 모를 정도로 방은 막혀 있었다. 형광등이 걸려 있는 천장에는 큰 대못이 박힌 막대기가 걸려 있고 그 대못에는 긴 줄들이 걸려 있다.
심 유경은 그런 줄을 보고 겁에 질렸다. 사람을 묶는 데 쓰는 게 틀림없었다. 눈을 감자 고인 눈물이 주룩 흘렀다. 연잎에 고인 이슬방울이 방울져 떨어지는 것 같다. 깨끗한 얼굴을 타고 눈물방울이 흐르자 춘식은 순간 그 방울을 맛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깊은 산 속 샘물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겹쳤다. 겁에 질린 얼굴의 여자, 유경은 옆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은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실내였다.
“왜 울지? 우는 눈이 예쁘다는 걸 보여주려고 하나? 정말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가 예쁘군. 저 친구들은 그런 예쁜 눈을 보면 파내서 갖고 싶어 해. 무서운 놈들이거든.”
마치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듯 유경의 긴 생머리를 쓰다듬었다. 징그러운 느낌, 유경은 어깨를 움츠리며 손을 들어 남자를 내치려했지만 너무 꽉 묶인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옷은 입혀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발가벗긴 몸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했다. 이 사람들은 혹시? 유경은 돈을 노리고 유괴나 납치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관 같은 상자 속에 들어가 쪼그려 누워있을 때만해도 이런 장소로 납치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행이라면 지금 바로 앞의 남자는 아까 그들처럼 상스럽지는 않다는 걸까. 잘 하면 몸성히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 아저씨. 보내주세요. 흑”
말끝마다 눈물을 삼키는 유경을 보며 피곤함을 느낀 춘식은,
“보내주다니 어디로. 지금 당장 어디로 보내달란 말이지? 이 땅 속으로”
바닥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자 바닥에는 큰 틀 같은 게 보였다. 손잡이를 열면 문이 열리는 그런 틀이었다.
“여기는 고집을 너무 피어 피곤하게 하는 여자들을 그냥 보내버린 곳이거든. 씨잘 데 없이 자존심을 세우거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여자들은 이곳에서 며칠이고 보내야 돼.”
춘식의 말은 유경의 입을 닫는 데 많은 시간을 드릴 필요가 없었다. 배운 년들이라 똑똑한 건지 모르겠지만......,
“난 너를 처음 멀리 봤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어. 걸을 때마다 살짝살짝 드러난 이 청바지 밑의 잘 그을린 발이 너무나 만지고 싶었거든. 분홍색과 갈색이 잘 섞인 듯한 이 발은 너무 귀엽기도 하고 앙증맞기도 했어. 지금 보아도 참 예뻐”
춘식은 귀중한 보물을 손에 들고 어쩔 줄 모른 사람처럼 유경의 통이 넓은 청바지를 조금 밀어 올려 슬리퍼 같은 샌들을 쥐고는 들어 올렸다. 은색의 발찌가 묘한 흥분을 주는 왼발이다. 발찌를 볼 때마다 그는 여자들이 자신을 구속해주기 바라는 마음의 표식 같다고 생각했다.
발목은 가느다랗지만 발목에서 발등을 따라 발끝까지는 도톰한 살집이 부드럽게 손에 안겼다. 신발을 벗기는 것은 더 뒤다. 지금은 아니다. 땀에 푹 젖은 발의 은은한 향기를 마시기 전에 먼저 충분한 감상을 하는 것이 춘식의 습관이다. 제의를 올리는 사제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검은 보석으로 빚어놓은 왼발을 들고 눈에 맞추는 춘식이다. 하얀 샌들에 잠긴 구리 빛 살갗이 마치 하얀 콘에 담긴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다. 춘식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맛보듯 유경의 구리빛 발을 들어 뺨에 비비다 입을 맞췄다. 물컹, 하는 살집이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많이 걸어 다녔는지 땀이 촉촉하게 밴 발이다. 불그레한 발등과 어린아이 뺨처럼 발그레한 발바닥이 샌들 사이로 비쳤다.
샌들 옆으로 보이는 발선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두껍거나 아니면 너무 얇은 여자들은 애써 외면하곤 했다. 바로 이런 두께의 발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발치에서부터 시작한 고운 선은 샌들 바닥을 따라 발 앞부분 신발의 걸림 줄을 지나 발끝에서 멈췄다. 끈에 눌린 발간 자국마저도 자극을 주었다. 발끝엔 분홍빛 페디큐어가 다섯 송이 장미꽃처럼 피어있다. 그는 장미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바로 이런 아름다운 발가락이 떠올랐다. 진한 체취가 여자의 모아진 발가락에서 흘러나왔다.
유경은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표정으로 눈을 떠 남자를 봤다. 청바지 통을 잡을 때 이제 당하는 구나, 생각했는데 이 남자는 옷을 벗기지 않고 발목을 소중한 물건처럼 바치며 입술에 댄 것이다. 그러나 유경은 순간 당황해서 발을 빼내려고 했다. 남자가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움이 큰 것이다.
“........”
입을 다문 채 유경을 쳐다보는 춘식은 발목을 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아얏. 아, 아파요. 꽉 잡지 마세요.”
“너 아무래도 이 밑으로 들어가야겠다. 저 친구들은 앞뒤 가리지 않은 놈들이거든. 이 밑이 어떻게 생겼나 그렇게 궁금해?”
생머리를 옆으로 설레설레 흔드는 유경의 발을 내려놓으며 아직도 쓰러져 있는 친구의 오른발을 들어 올리며 그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이 아래는 작은 감방과 같은 곳이야. 목을 매달린 채 앉지도 못하고 서있어야 해. 똥, 오줌도 서 있는 그 자세로 봐야 하거든. 생각해 봐. 꼴이 어떻겠어. 죽고 싶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돼. 그럼 목에 감긴 줄이 편안함을 주지. 대신 네 몸뚱아리는 쥐들이 뜯어먹고 벌레들의 놀이터가 되겠지. 우린 이 위에서 이 친구만 데리고 놀면 되니까. 잘 생각해봐.”
음성은 낮았지만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 있어 유경의 여린 피부를 가르고도 남았다. 말을 마친 남자는 친구인 은혜, 가엽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누워 있는 그녀의 한 발을 들며 골동품을 감상하듯 봤다.
“난 이렇게 살집이 포동포동한 발을 매우 좋아하지. 기다랗거나 마른 발은 줘도 싫어. 안심해. 네 꺼도 마음에 드니까. 어디 두 발을 들어볼까?”
역시 낮은 목소리. 그가 가리키는 곳은 자신의 얼굴이다. 얼굴에 대란 말인가? 유경은 머뭇거렸다.
“난 가만 있을 테니까 네가 내밀어 봐. 그러면 아무 일 없을 거야. 여기서 죽으면 누가 그 죽음을 슬퍼하겠니. 그렇지?”
“살려주세요, 흑 흑, 우릴 보내주실 건가요? 무서워요.”
“하기 나름”
그리고 말을 끊자 유경은 두려운 표정으로 등으로 벽에 기대면서 두 발을 들었다. 신발을 벗을까 하다 그대로 두 발을 들어 남자의 시선에 맞췄다. 샌들의 뒤는 고정 발목 띠가 없어 발치에서 떨어졌다.
“이렇게요?"
“그래”
샌들 밖으로 조금 드러난 분홍색 발바닥이 그의 혀를 이끌었다. 용케도 벗겨지지 않은 샌들은 갈색의 발에 걸쳐 건들거렸다. 여자들은 쉽게 벗어질 것 같은데도 신기하게 잘 벗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궁금하기도 한 춘식이다.
신발 가로 드러난 발바닥의 선을 따라 혀로 핥았다. 안쪽의 옴폭한 발선과 바깥쪽의 기다란 발선을 입술과 혀로 훑은 춘식은 샌들을 발치부터 벗겨내 두 손에 들고 샌들의 검정 바닥을 얼굴을 박고 여운이 남아있는 향기를 코로 모았다.
‘아! 이 냄새. 이 향기를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 건가? 가죽내음에 겉들인 이 예쁜 계집아이의 발 내음.’
오히려 민망한 얼굴이 된 유경은 두 발을 얼굴 높이 든 채 남자를 보다 눈을 감아버렸다. 사실 그녀는 발을 잘 가꾼 편이다. 손질을 잘 해준 나무가 깔끔한 것처럼 그녀의 발 역시 깔끔했다.
발바닥으로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도록 혀끝이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왜 이런 향기를 맡으면 취할까? 깊은 냄새 탓일까 아니면......“
동그란 뒤꿈치의 살을 만지며 부드러움을 맛본 춘식은 사과를 덥석 깨물듯 베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계란이 터질 때처럼 흰자위 속의 노른자가 터질듯 했다.
“아얏! 물지 마세요. 아, 아파요”
셔츠만 입은 남자가 뒤꿈치를 깨물자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팠다. 억센 손아귀에서 발을 빼내기는 불가능했다.
“아파? 많이? 그래도 참아. 나의 기쁨을 방해하지 마.”
“흑, 흑, 아파요. 그냥 만지면 안돼요? 가만히 있을 게요”
두 발을 모아 얼굴 높이로 든 유경이 아픈 표정을 짓자 춘식은 이빨 자국이 뒤꿈치에 남은 왼발의 분홍빛 발바닥을 혀로 핥았다. 갸름한 발이다. 폭이 적당히 보기 좋은 발바닥의 안쪽 쏙 들어간 곳을 핥으며 발끝, 다섯 개의 발가락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발끝까지 살짝살짝 핥았다.
“발로 해봤니? 풋잡이라고 한데 해본 적 있어?”
고개를 가로 젓자
“지금 내 이 아래가 거의 터질 지경이거든. 어떻게 해야 할까?”
“모, 몰라요”
“몰라? 모르면 배워야지”
반바지는 쉽게 내려지고 체크무늬 박스 팬티까지 앉은 채로 벗어내자 거기 한 가운데 불그스름한 살덩이가 꿈틀거렸다. 먹이를 앞에 둔 맹수의 혀다.
“하, 하지 말아주세요. 시, 싫어요.”
앙탈을 무시하며 춘식은 유경의 두 발을 힘줘 붙잡고는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불끈 솟구친 좆은 송곳처럼 유경의 두 발바닥 사이를 뚫었다. 발 안쪽 맞닿은 여린 살을 마찰시키며 춘식의 껍질이 벗어진 좆대가리가 유경의 두 눈에 정지화면처럼 새겨졌다. 간지러운 느낌은 없었지만 얼굴이 불거진 것을 보면 수치심에 어쩔 줄 모른 표정이다. ‘으음.......’ 긴 신음소리를 내며 발바닥을 문지르던 남자는 다시 두 발을 모아 꽉 죄고는 그 사이로 용두질을 거세게 했다.
흥분! 그렇다. 춘식은 그 뜨거운 흥분을 아랫도리부터 뜨겁게 태워 올렸다.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진 좆이다.
‘하아, 하아. 쫄깃한 이 년의 두 발이 정말 나를 감싸는 것 같군’
“눈을 떠. 이 년아. 핏발 선 이 아저씨의 좆님을 봐란 말이야”
흥분을 하면 겉잡을 수 없이 상욕을 쏟아 내뿜은 그다. 모든 겉치레가 사라지고 알몸의 상태로 변해버린 것이다.
“어때? 내 좆님이 피어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아, 응?”
유경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느낌이다. 느낌 보다는 담담하다는 편이 맞을까? 두 발에 눌어붙는 칙칙한 남자의 성기가 징그럽기만 했다. 남자를 모른 유경은 아니지만 바로 눈앞에서 앞뒤로 움직이는 물건은 검으튀튀한 벌레같이 흉측스럽기만 했다.
“처음은 발이지만 한번 스타트하면 쏜살 같이 뛰어가는 경주마처럼 네 년의 모든 구멍을 짓밟아 버리고 말 걸. 이 년도 마찬가지지. 훗, 훗”
신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뿜은 춘식은 팔을 뻗혀 은혜의 한 발을 들었다. 정말 통통한 살집이 잘 익은 과일이었다. 발등으로 푹신하게 잡힌 살은 부드러운 그리고 손질이 잘된 정육처럼 식욕을 돋우었다. 유경의 두 발 사이로 좆을 비비며 은혜의 한 발을 든 춘식은 입으로 가져가 이빨로 슬리퍼 같은 샌들을 벗겼다. 진득한 가죽냄새가 코끝에 풍겼다. 톡, 쏘는 향기는 그의 좆을 더 거세게 부풀어 올렸다. 싸기 직전이다. 뇌를 때리는 충동은 은혜의 뒤꿈치에 이빨을 들이대게 만들었다.
이빨 하니까 춘식은 요즘 들어 어금니를 중심으로 간질간질 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였다. 아마 얼마 전인가 공원에서 희멀건 다리가 예쁜 계집아이의 발을 핥으면서 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래도 심하지는 않았었다. 더 정확히 짚어보면 그 날, 야간학교 덮칠 때 스타킹에 쌓인 매혹적인 다리를 입술로 비빌 때 일 것이다. 자신의 이빨이 더 강해지고 더 날카로워 진 것 같았다.
“끄응!”
그때까지도 정신을 잃고 있던 은혜는 발에 강한 통증을 느끼자 짧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여름 낮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듯 모든 게 누르스름했다. 어찔한 머리를 손으로 잡으려하다 손이 뒤로 묶인 걸 알고는 ‘어?’ 하는 표정이다.
“이제 깨어났군.”
“어, 어디에요? 누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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