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콘돔 - 1부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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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문짜와?!!]

"잉?? 이게 뭐야??..쳇~"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서류전형에 통과되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서너달전쯤 서류를 넣었던 곳인데 수시로 충원해서 신입을 채용하는 그런 듣보잡 메이커의 정수기회사의 본사
내근직이었다.
물론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조만간 수천억 부자가 되어 돈을 어떻게 펑펑 쓰고 살까 궁리하고 있는 귀인에게 어디 명함도 못내밀 정도의
이름도 없는 정수기회사의 말단 신입사원이라니..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해서 새벽에 일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아침여덟시반까지 출근하고 직장상사한테 시달리다가
저녁시간에 또다시 혼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기진맥진한 그로끼 상태로 집에 오는 그런 챗바퀴일생으로 10년동안
빡빡하게 돈을 모아봤자 지금 사는 서울변두리의 후질구레한 동네의 다 썩은 빌라한채도 사기 힘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혼은 언제, 어떻게 할 것이며, 애들은 또 어떻게 키울 것인가?

"훗.. 합격을 축하한다고??.. 함께 커나갈 인재를 모신다고??...푸핫~!!.. 니미.. 까고들 앉아있네..."




며칠째 미래와 과거를 오가는 영화들만 골라서 보고 있다.
과연 녀석은 어떻게 과거의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하지만 아무리 영화를 봐도 도무지 영감이 나지 않았다.

레드락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꺼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과거의 누군가에게
접근해서 돈이 되는 모든걸 싹쓸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녀석은 다음 미션에 대해 며칠 후 새로운 미션이 주어질 때 까지 잠자코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리고 녀석은 내가 알고자 하는 미래의 그 어느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내생각에는 수많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그래도 처음 보다는 많이 친근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에게는 오로지 돈에 대한 목적, 그 한가지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조차 없는듯 해 보였다.

그런걸 봤을 때 장난끼 많고 붙임성 좋은 명준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녀석은
미래의 인간이 아닐수 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어떻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죄다 맞힐 수 있단 말인가?
혹시.. 녀석은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
갑자기 등꼴이 오싹해 진다.

무덤속에서나 나오고, 흉가에서나 사는 그런 과거형의 귀신이 아니라
미래형 귀신.. 가령 인터넷 네트워크 속에서만 사는 하이테크형 귀신이랄까..
그것도 아니면 지능형 바이러스라던지..

미래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나 궁금해 하는데 녀석은 장난이라도 미래모습이 어떻다 저떻다 등의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건 녀석의 존재에 대해 유희적동물인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의구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며칠후 이른 아침부터 녀석에게 메일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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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션입니다. 09-10-30 (화) 08:15:00
보낸사람: 주소록에 추가 | 수신차단하기
받는사람:

[주]비스타바이오의 주식을 어제 종가가격으로 매도처분 하시고 [주]세종테크놀로지의 주식을 매수하십시오.
[주]세종테크놀로지의 주식 매수는 이번주 금요일을 넘기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궁금해 하실꺼 같아 미래의 모습 일부분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친한 친구였던 최명준씨는 유미란씨와 결혼해서 아들하나,딸하나를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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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준이가 미란이와 결국 결혼을 하는군..ㅎㅎ"
미란은 명준의 아주 오래된 여자친구이다.

명준이 녀석은 그런 미란씨를 친구라는 애매한 선으로 규정해 두고 다른 젊은 영계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녀석인데 결국 끝에가서 그렇게 된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녀석이 인간미가 없고 사람이 아닌 존재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나저나 [주]비스타바이오는 EU수출계약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신약승인건 때문에 나날이 치솟는
주식인데 이걸 지금 팔아치우고 쥐뿔도 없어 보이는 듣보잡의 [주]세종테크놀로지를 죄다 사들이라니..
하지만 수천억을 벌기 위해서 10년후 미래의 레드락이 시키는대로 하는 수 밖에 없다.

저녁에 친구 명준을 만나 녀석과 삼겹살에 쇠주를 기울이고 있다.

"넌 임마.. 새로 입사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회사를 때려치우냐?.."
"훗... 술이나 한잔 줘봐..."

"오늘 퇴사주는 내가 쏴야겠다.. 자 한잔 받어.."
"참.. 너.. 미란이 아직도 만나냐?.."

"누구?? 유미란??..."
"응..."

"뜬금없이 미란이 얘기는 왜 하냐?.."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가끔 연락이야 오긴 하는데.. 안부나 묻는 정도지 뭐.."
"너 걔... 마음에 없냐??..."

"하하.. 왜?? 미란이가 보고싶냐??..."
"니가 안가질꺼면 나 소개팅좀 해주라..."

"하하하.. 짜식.. 진짜 외롭구나?? 진짜 미란이랑 다리 함 놔줘??.."
"하하......"

"지 마누라를 소개시켜 준댄다.. 크크.. 병신.."

속으로 웃음이 나와 죽을 지경이다.
내친김에 더욱 장난을 치기로 결정했다.

"야야..새꺄 농담이야..임마.. 소개팅은..무슨.. 어차피 니가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잖아.."
"다 옛날얘기지 임마.. 나 걔 얼굴 안본지 꽤 오래됐어.. 한 삼년 됐나??..."

"옛날에 미란이랑 사귈때 빠구리 자주했냐?.."
"야.. 콘돔이 찢어질 때 까지 한적도 있었다... 그년이 얼마나 밝히는 년인데... 니가 몰라서 그러지.."

"크하하.. 미란이가??.. 진짜??.."
"그년은 두번하고도 성이 안차.. 진짜야??.. 완전 죽어.. 나 코피까지 흘렸었어.."

"푸하하하...."
"너 옛날에 화양리에서 내생일날 옆테이블 미친새끼들하고 싸우고 하던 때 기억나지??..."

"어.. 어.. 맞다.. 그래 명준이 니생일날.."
"그날 미란이년 만나서 다섯번이나 빠구리 했다.."

"뭐?? 그날 걔 안왔잖아.."
"니네랑 헤어지고 집에 가는데 그년이 문자 왔더라고..생일축하한다고.. 지 혼자 집에서 술마실고 있는데..
와달라고.."

"그래??..."
"그래서 그년 집에 가서 존나게 했다... 야.. 나중에는 정액이 안나오고 바람만 나오더라.."

"푸하하하..."
"헤헤헤....."

이 순진한 녀석은 미래의 자기 마누라에 대해 엄청난 음담패설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미란이의 조개의 모양이 어떻다는 둥..
털이 어떻다는 둥..
애무할 때 어떻게 하면 물이 질질 나오고
빠구리를 할 때 어떤 자세를 좋아한다는 등..

이날 밤 발가벗은 미란이는 우리의 술안주꺼리가 되었다.

명준이와 헤어진 후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떠오르는게 있었다.
내가 괜한 얘기를 끄집어 내어서 영화 [나비효과]처럼 명준의 운명이 바뀌는 건 아닐까 "아차"하는
그런 걱정이었는데 레드락 녀석에게 다음날 별다른 얘기가 없는 걸 보니 운명이라는게 영화처럼 그리 쉽게
바뀔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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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사람 : ; 개인별 주소록에 추가
참조 :
제목 : 오늘까지 몽땅 다 사들였습니다.
내용


세종꺼 오늘까지 잔량들 긁어모아 죄다 사들였습니다. 어째 오늘매수금이 전날 종가보다
많이 떨어졌던데요? ㅠㅠ
그리구 비스타바이오는 이번에 신약승인건 통과된거 때문에 30프로는 치고 올랐던데요..ㅠㅠ

그래도 믿겠습니다. 뭐 어차피 미래에서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니..

그리고 저는 결혼 하나요??
명준이 녀석말고 제 소식도 좀.. 가르쳐 주시면 안될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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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09-11-03 (금) 19:29:00
보낸사람: 주소록에 추가 | 수신차단하기
받는사람:

거래량이 적어 쉽지가 않았을 텐데 단기일내에 매수를 하셨군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를 믿고 전액을 투자하신 만큼 몇십배의 값어치로 되돌아 올 날도 이제 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시는 것 같군요.
솔직히 별로 가르쳐 드리고 싶지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모르고 지나칠 때가 더 나은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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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의 답장을 받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설마 잘못되는건 아닌가 해서이다.

10년후 나의 모습은 아예 모르고 있는게 더 낫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녀석은 나의 미래에 대해 좋지않다는 뉘앙스를 풍긴게 분명하다.

설마 10년후에도 장가도 못가고 딸딸이 신세로 지내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미래에 혹시 내가 무슨 사고를 쳐서 교도소에 쳐박혀 있는 건 아닌지..
그것도 아니면 설마.. 내가 이세상에 없는건 아닐런지...!!!

돈도 돈이지만 녀석의 해괴한 답변 때문에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컴퓨터앞에서 일어나 주방쪽의 커피포트의 전원스위치를 올리고 종이컵에 스틱형 인스턴트
봉지커피를 찢어 넣었다.

[쪼르륵~]

뜨거운 물을 붓고 빈 스틱봉으로 커피물을 대충 몇번 휘저은 후 입에문 담배에 불을 땡겼다.

"그래.. 까짓꺼 겁낼꺼 까지야..."

나의 미래에 대해 더이상 궁금해 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떵떵거리고 살텐데..
그 돈으로 혹시 잘못된 나의 미래라면 지금부터 몽땅 바꿔 버리면 될텐데..

"후우~"

녀석이 나에게 보낸 메일들을 따로 문서로 저장을 해두었고, 그 메일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고 있다.
혹시나 녀석의 정체나 나의 미래에 대한 어떤 힌트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이상한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며칠전 나에게 명준의 미래에 대해 가르쳐 주었던 날의 메일이었다.

[친한 친구였던 최명준씨는....]

"친한 친구였던.."
"였던???...."

친한 친구[인] 이 아닌 친한 친구[였던]
[였던]에 대해 국어사전을 찾아 보았다.
[였]과 [던]이 합쳐져 분명 과거에 완료되지 않고 중단되었다는 미완의 의미를 나타내는 어미이다.

그렇다면 명준과 나 사이에 무슨 불화가 생기거나 어떤 큰문제가 생겨 20년 우정이 중단되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만일 내가 돈으로도 해결 안되는 불치병으로 일찍 요절해 버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10년후 명준이 새끼가 불쌍한놈 돈이나 펑펑 쓰고 뒈져라.. 하며 나를 돕고 있다는 말인가??..."

갑자기 또다시 불안이 엄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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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단편 모음소설 [찢겨진 콘돔]
그 첫번째 이야기인 [Engagement]의 결말이 곧 다가오네요.

다음편을 조금 길게 집필되더라도 이 스토리는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두번째 이야기도 바로 릴레이 집필 들어갑니다.

다들 소라와 함께~^^ 즐거운 주말 되시길 빌어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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