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을 해치우다 - 1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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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찌르듯 받아들이라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환청이 들리는 가 싶어서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겨우 식탁에 기대고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분명히 환청이 아니었다. 울리는 음성이었지만, 초자연적인 소리가 아니라 인공적인 냄새가 났다. 순간적으로 철기산의 소설이 떠올랐다. 집중해서 소리가 들리는 곳을 귀로 찾기 시작했다. 눈이 좋지 못한 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어폰을 거의 쓴 적이 없어서 귀가 좋은 나였다. 소리는 입체적으로 들렸다. 그래서 처음엔 집에 있던 홈 서라운드 시스템을 이용한 것인가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소리가 들리는 위치가 달랐다. 가장 가까운 곳은 주방이었다. 난 주방에 어떤 스피커도 설치한 적이 없었다. 겨우겨우 눈을 뜨고, 밝은 빛이 비치던 창을 응시했더니, 그곳에는 아무 것도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닫고갔던 커튼도 그대로 쳐진 상태였다. 베란다로 뛰어들어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의 창을 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될만큼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놀란 미연이가 성난 짐승같은 나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보았고, 난 뒷머리를 긁으면서 미연이에게 물을 한잔 떠다 준 다음 이야기했다.
"임미연,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생각이 모자랐어. 나도 남자라서 참지 못했다. 진짜 미안해."
"미안한 건 알아요? 왜 그랬어요. 아니, 어쩔 거예요?"
"어쩌기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가주면 안되겠냐?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잖아. 엄마도 나도 그냥 묻어둘 거야."
"진짜... 왜 그랬어요... 안 그랬으면 좋았잖아요.."
미연이가 쥐어짜듯 말해서 정말로 속이 탔다. 미연이가 마시지 않고 그냥 놓아 둔 물컵을 들고 몽땅 비웠다. 미연이가 한 손에 뭔가를 쥐고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에이포 용지를 구긴 것 같은 종이였다. 내가 물끄러미 그것을 보자 미연이가 그 쥐었던 종이를 내 얼굴로 휙 던진 다음, 달아나듯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미연이가 나가고 난 다음에야 난 그 구겨진 종이를 폈는데,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그건 형수님이 엎드려 있고 내가 뒤에서 엉덩이에 얼굴을 쳐박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잔뜩 찡그린 형수님은 얼굴에 약간 침이 흐르고 있었고, 내 얼굴은 절반 정도만 보였는데, 엉덩이 끝에 내 혀가 보였다. 문제는 이런 사진을 찍으려면 형수님과 나의 정면에 있어야 했는데, 당연하게도 나와 형수님의 앞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미치고 있나를 계속 생각했다. 뭔가 강박증 때문에 내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고 있는가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현실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내내 내가 겪는 일들이 모조리 현실상의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일들이 게속 되었던 것이다. 초인종이 울려서 나갔더니, 중국집 배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는 시켜서 반도 안 먹고 내놓더니, 또 시키셨네요."
"먹다가 손님이 와서요. 그러다 보니까 다시 땡겨서요. 괜한 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네요."
"아뇨. 뭐, 배달이 노나요. 어디든 가야 하는데요. 뭐. 이 아파트는 가까워서 괜찮아요. 멀리 달랑 하나 들고 가면 짜증나지만요. 그리고 이거 보세요. 잔뜩 오는 거라서 괜찮아요."
그러고보니 빨간색 플라스틱 배달통엔 요리 몇가지와 짜장면 짬뽕이 가득했다. 시간도 좀 늦었는데, 누가 이렇게까지 많은 배달을 시켰나 했는데, 배달원이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르켰다.
"윗집 이사하나 보더라고요. 아까 여기 배달하러 왔다가 윗집 이삿집에 가서 전단스티커 하나 주고 왔거든요. 다 그집에서 시킨 거예요. 대형 주문 따왔다고, 보너스로 만원 받았어요. 그리고 사장님이 이건 그냥 서비스로 주고 오래요. 여기 주문 때문에 10만원짜리 파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진짜요? 고맙네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죠. 그런데 윗집 사람들 되게 후하네요. 제가 포장이사 하는 집마다 배달 많이 가봤지만, 탕수육이나 시켜주면 땡이지. 마요네즈 새우에 고추잡채에 꽃빵까지 시켜주는 데는 처음이에요. 무슨 연예인 집 같기도 하던데요. 잔뜩 연예인 사진이 붙어 있더라고요. 아까 보니까."
"모르겠어요. 십대 아이돌이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번에 보니까 그런 집은 비상계단이 완전 엉망이더라고요. 애들 거기서 자기도 하고, 소변보고 시끄럽고."
"혹시 누가 이사온 건지 아시면, 다음에 알려주세요. 궁금하니까요."
"나야 볼 일이 있나요. 오히려 아저씨가 배달하고 그러면 더 알겠죠."
"하하, 그런가요. 그럼 나도 알면 알려드릴게요. 맛있게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공짜 짜장면을 들고 식탁으로 가면서 난 스피커의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강하게 의심되었던 위치로 가서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요즘엔 스피커의 모양이 특이한 것이 많아서 내가 모르는 모양으로 변형되어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였다. 짜장면이 부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로 내 탐색은 거의 십여분이나 계속 되었고, 난 결국 찾아내고 말았다. 하나하나 모든 것을 점검하다가 난 싱크대 사이의 타일 중 하나가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었다. 타일은 같은 제품의 것이었지만, 미묘하게 색이 달랐다. 다른 타일에 비해 생활감이 더 적었던 것이다. 난 갈아끼워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당장 타일을 깰 수 있는 뭔가를 찾았다. 그 타일에는 뭔가의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장도리를 찾으려고 공구상자를 꺼내는데, 초인종을 누군가 눌러서 나갔더니, 중년의 부인이 시루떡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있었다. 이사떡인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1102호에 이사왔어요. 잘부탁려요."
"네. 반갑습니다."
"혼자 사시나 봐요."
"네. 사진액자가 많이 올라가서 연예인 집인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이네요."
"아, 남편이 연예인 회사를 해요. 별 문제는 없을 거예요. 연예인이 오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네. 저도 잘 부탁 드릴게요."
"그런데, 얼굴이 굉장히 익숙해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네요."
"저도 그러네요. 혹시 구미에서 사신 적이 있으세요?"
"예. 제가 어릴 적에 그 근처에서 교사 생활을 했거든요."
벼락을 맞는 느낌이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어떤 우연도 이렇게까지 겹치면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중년의 그녀는 다름아닌 내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이었던 정보경 선생님이었다. 내 최초의 부끄러운 기억이었던 그녀를 그녀가 중년이 다되어서, 서울의 청파동 아파트에서 만나다니 이건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거의 십여년이나 잊고 있던 그 날의 기억을 이진섭에 의해 기억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이렇게 다시 본다는 건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혹시, 정보경 선생님.."
"누구? 이경민..어머, 반갑다."
"네. 절 기억하고 계셨어요?"
"그럼. 널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지금은 좀 그렇고, 이따가 저녁 때쯤 내려올게. 그런데, 너 직장은..?"
"아, 휴가에요. 출판사에 다니고 있어요."
"그렇게 책을 읽어대더니. 역시, 그렇게 됐네. 축하한다. 그런데, 무슨 여름 다 지나서 휴가야?"
"그냥요. 남들 다 쉴 때 쉬기 싫어서요. 좀 조용하게 보내고 싶어서. 선생님은 선생님 그만두신 거예요?"
"응. 애들 키워야지. 이따가 이야기하자."
"예."
정보경 선생님의 눈에서 묘한 색기를 발견한 난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에게 그런 눈빛을 받을만한 일을 난 한 적이 없다. 중학교 제자에게 왜 그런 눈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입맛이 달아나버려서 난 짜장면을 일단 내 그릇에 옮긴 후 냉장고에 넣어뒀다. 짜장면 그릇을 밖에 내다놓고는 테리우스에게 전화를 했다.
"어, 형, 어쩐 일이야? 서울은 잘 올라갔어?"
"응. 넌 어디까지 썼냐?"
"음.. 어디까지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아침부터 계속해서 쓰고 있는데 말이야.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주인공이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서. 형이 잡은 컨셉 다 좋은데, 내가 쓰다보니까,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어때요?"
"괜찮긴 한데, 그러면 재미가 좀 떨어지지 않을까?"
"가르치는 이야기만 아니면 될 것 같아서 말이지. 내가 잘 쓸게요. 30대가 주인공이니까, 어렸을 때나 십대때 성장하는 무협처럼 너무 욕망만 쫓으면 작품의 퀄리티가 떨어질 것 같아서."
"그래. 일단 써 봐. 그리고 한 챕터가 다 될 때마다 회사 이메일말고, 내 개인 이메일로 보내고."
"알았어요. 참, 내가 사라에 대해서 좀 알아봤는데, 아버지가 건드리진 않았나 봐. 아버지가 안했으면 형도 안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형이 마음에 들면 어떻게 해 보던가?"
"넌 뭐 그딴 건 알아보고 난리냐? 왜? 무슨 특별관리대상인가 그건 아니래?"
"그럴 상황이 아닌가 봐. 아버지가 그럴 수 있는 몸상태가 못되는 것 같아. 위독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몹시 건강이 별로신가 봐."
"한 번 찾아가서 뵙는 건 어떻겠냐?"
"아니. 정신이 있을 때 만나면, 심한 소리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지금은 별로. 형 끊는다."
"어."
이진섭의 일기가 떠올랐다. 이진섭은 정말로 아버지를 죽이려는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서 안방으로 가려다가 꺼내놓은 공구세트가 보였다. 무작정 장도리를 휘두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한쪽 끝이 날카로운 정과 장도리를 가져다가 타일의 가장자리를 두드려 그 한장만을 떼어내려고 했다. 딱딱 소리가 나며 타일 하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거기엔 구멍이 뚫겨 있었고, 선이 연결된 두가지 장비가 있었다. 하나는 소형 스피커였고, 다른 하나는 소형 카메라였다. 스피커는 그렇다치고, 카메라는 왜? 타일이 특별한가 하고 떨어지는 타일을 주으려다가 난 길게 난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 구멍은 어디로 난 것이지를 고민하려는 구멍 건너편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전 반대에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죠?"
"그는 진짜로 중요한 인물이야. 선사님께서 선택을 하신 분이지. 그리고 이 시점이 지나면, 겨울이 되자마자 정말로 오세인을 만나게 된다고. 그럼 모든 것이 끝이야. 결혼할만큼 중대한 인연은 함부로 바꿀 수가 없어. 스스로의 선택으로 낙원행을 결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야. 만약 이경민이가 3년후에 죽어 버린다면, 선사님의 일도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냥 오빠를 믿어보는 건 어떨까요? 좋은 사람이잖아요."
"흥, 무슨 소리. 그는 고등학교 때 사람을 죽였어."
"사람을 죽이다니요?"
"말로 한 사람을 죽였지. 이름이 이창동이었던가..그랬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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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너무 설정이 복잡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읽는 사람이 줄어도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니 쓰는 저도 즐겁네요. 아까 어떤 분이 소설게시판에다 이어쓰기에 대한 것을 적은 걸 봤는데,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품활동도 많고 팬도 많은 와핑돌이님과 제가 한편씩 글을 연이어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도 상의하지 않고, 각자 한 편씩을 쓰는 거죠. 와핑돌이님과 전 쓰는 스타일도 장르도 다르니까, 오히려 더 재미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요? 뭐, 그렇게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필력이 좋은 야설을 쓰는 분과 이어서 쓴다면 야한 장면이 많이 없는 제 글에 윤기가 돌지 않을까 해서요. 하하하.
"임미연,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생각이 모자랐어. 나도 남자라서 참지 못했다. 진짜 미안해."
"미안한 건 알아요? 왜 그랬어요. 아니, 어쩔 거예요?"
"어쩌기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가주면 안되겠냐?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잖아. 엄마도 나도 그냥 묻어둘 거야."
"진짜... 왜 그랬어요... 안 그랬으면 좋았잖아요.."
미연이가 쥐어짜듯 말해서 정말로 속이 탔다. 미연이가 마시지 않고 그냥 놓아 둔 물컵을 들고 몽땅 비웠다. 미연이가 한 손에 뭔가를 쥐고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에이포 용지를 구긴 것 같은 종이였다. 내가 물끄러미 그것을 보자 미연이가 그 쥐었던 종이를 내 얼굴로 휙 던진 다음, 달아나듯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미연이가 나가고 난 다음에야 난 그 구겨진 종이를 폈는데,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그건 형수님이 엎드려 있고 내가 뒤에서 엉덩이에 얼굴을 쳐박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잔뜩 찡그린 형수님은 얼굴에 약간 침이 흐르고 있었고, 내 얼굴은 절반 정도만 보였는데, 엉덩이 끝에 내 혀가 보였다. 문제는 이런 사진을 찍으려면 형수님과 나의 정면에 있어야 했는데, 당연하게도 나와 형수님의 앞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미치고 있나를 계속 생각했다. 뭔가 강박증 때문에 내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고 있는가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현실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내내 내가 겪는 일들이 모조리 현실상의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일들이 게속 되었던 것이다. 초인종이 울려서 나갔더니, 중국집 배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는 시켜서 반도 안 먹고 내놓더니, 또 시키셨네요."
"먹다가 손님이 와서요. 그러다 보니까 다시 땡겨서요. 괜한 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네요."
"아뇨. 뭐, 배달이 노나요. 어디든 가야 하는데요. 뭐. 이 아파트는 가까워서 괜찮아요. 멀리 달랑 하나 들고 가면 짜증나지만요. 그리고 이거 보세요. 잔뜩 오는 거라서 괜찮아요."
그러고보니 빨간색 플라스틱 배달통엔 요리 몇가지와 짜장면 짬뽕이 가득했다. 시간도 좀 늦었는데, 누가 이렇게까지 많은 배달을 시켰나 했는데, 배달원이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르켰다.
"윗집 이사하나 보더라고요. 아까 여기 배달하러 왔다가 윗집 이삿집에 가서 전단스티커 하나 주고 왔거든요. 다 그집에서 시킨 거예요. 대형 주문 따왔다고, 보너스로 만원 받았어요. 그리고 사장님이 이건 그냥 서비스로 주고 오래요. 여기 주문 때문에 10만원짜리 파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진짜요? 고맙네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죠. 그런데 윗집 사람들 되게 후하네요. 제가 포장이사 하는 집마다 배달 많이 가봤지만, 탕수육이나 시켜주면 땡이지. 마요네즈 새우에 고추잡채에 꽃빵까지 시켜주는 데는 처음이에요. 무슨 연예인 집 같기도 하던데요. 잔뜩 연예인 사진이 붙어 있더라고요. 아까 보니까."
"모르겠어요. 십대 아이돌이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번에 보니까 그런 집은 비상계단이 완전 엉망이더라고요. 애들 거기서 자기도 하고, 소변보고 시끄럽고."
"혹시 누가 이사온 건지 아시면, 다음에 알려주세요. 궁금하니까요."
"나야 볼 일이 있나요. 오히려 아저씨가 배달하고 그러면 더 알겠죠."
"하하, 그런가요. 그럼 나도 알면 알려드릴게요. 맛있게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공짜 짜장면을 들고 식탁으로 가면서 난 스피커의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강하게 의심되었던 위치로 가서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요즘엔 스피커의 모양이 특이한 것이 많아서 내가 모르는 모양으로 변형되어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였다. 짜장면이 부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로 내 탐색은 거의 십여분이나 계속 되었고, 난 결국 찾아내고 말았다. 하나하나 모든 것을 점검하다가 난 싱크대 사이의 타일 중 하나가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었다. 타일은 같은 제품의 것이었지만, 미묘하게 색이 달랐다. 다른 타일에 비해 생활감이 더 적었던 것이다. 난 갈아끼워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당장 타일을 깰 수 있는 뭔가를 찾았다. 그 타일에는 뭔가의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장도리를 찾으려고 공구상자를 꺼내는데, 초인종을 누군가 눌러서 나갔더니, 중년의 부인이 시루떡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있었다. 이사떡인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1102호에 이사왔어요. 잘부탁려요."
"네. 반갑습니다."
"혼자 사시나 봐요."
"네. 사진액자가 많이 올라가서 연예인 집인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이네요."
"아, 남편이 연예인 회사를 해요. 별 문제는 없을 거예요. 연예인이 오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네. 저도 잘 부탁 드릴게요."
"그런데, 얼굴이 굉장히 익숙해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네요."
"저도 그러네요. 혹시 구미에서 사신 적이 있으세요?"
"예. 제가 어릴 적에 그 근처에서 교사 생활을 했거든요."
벼락을 맞는 느낌이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어떤 우연도 이렇게까지 겹치면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중년의 그녀는 다름아닌 내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이었던 정보경 선생님이었다. 내 최초의 부끄러운 기억이었던 그녀를 그녀가 중년이 다되어서, 서울의 청파동 아파트에서 만나다니 이건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거의 십여년이나 잊고 있던 그 날의 기억을 이진섭에 의해 기억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이렇게 다시 본다는 건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혹시, 정보경 선생님.."
"누구? 이경민..어머, 반갑다."
"네. 절 기억하고 계셨어요?"
"그럼. 널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지금은 좀 그렇고, 이따가 저녁 때쯤 내려올게. 그런데, 너 직장은..?"
"아, 휴가에요. 출판사에 다니고 있어요."
"그렇게 책을 읽어대더니. 역시, 그렇게 됐네. 축하한다. 그런데, 무슨 여름 다 지나서 휴가야?"
"그냥요. 남들 다 쉴 때 쉬기 싫어서요. 좀 조용하게 보내고 싶어서. 선생님은 선생님 그만두신 거예요?"
"응. 애들 키워야지. 이따가 이야기하자."
"예."
정보경 선생님의 눈에서 묘한 색기를 발견한 난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에게 그런 눈빛을 받을만한 일을 난 한 적이 없다. 중학교 제자에게 왜 그런 눈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입맛이 달아나버려서 난 짜장면을 일단 내 그릇에 옮긴 후 냉장고에 넣어뒀다. 짜장면 그릇을 밖에 내다놓고는 테리우스에게 전화를 했다.
"어, 형, 어쩐 일이야? 서울은 잘 올라갔어?"
"응. 넌 어디까지 썼냐?"
"음.. 어디까지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아침부터 계속해서 쓰고 있는데 말이야.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주인공이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서. 형이 잡은 컨셉 다 좋은데, 내가 쓰다보니까,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어때요?"
"괜찮긴 한데, 그러면 재미가 좀 떨어지지 않을까?"
"가르치는 이야기만 아니면 될 것 같아서 말이지. 내가 잘 쓸게요. 30대가 주인공이니까, 어렸을 때나 십대때 성장하는 무협처럼 너무 욕망만 쫓으면 작품의 퀄리티가 떨어질 것 같아서."
"그래. 일단 써 봐. 그리고 한 챕터가 다 될 때마다 회사 이메일말고, 내 개인 이메일로 보내고."
"알았어요. 참, 내가 사라에 대해서 좀 알아봤는데, 아버지가 건드리진 않았나 봐. 아버지가 안했으면 형도 안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형이 마음에 들면 어떻게 해 보던가?"
"넌 뭐 그딴 건 알아보고 난리냐? 왜? 무슨 특별관리대상인가 그건 아니래?"
"그럴 상황이 아닌가 봐. 아버지가 그럴 수 있는 몸상태가 못되는 것 같아. 위독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몹시 건강이 별로신가 봐."
"한 번 찾아가서 뵙는 건 어떻겠냐?"
"아니. 정신이 있을 때 만나면, 심한 소리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지금은 별로. 형 끊는다."
"어."
이진섭의 일기가 떠올랐다. 이진섭은 정말로 아버지를 죽이려는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서 안방으로 가려다가 꺼내놓은 공구세트가 보였다. 무작정 장도리를 휘두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한쪽 끝이 날카로운 정과 장도리를 가져다가 타일의 가장자리를 두드려 그 한장만을 떼어내려고 했다. 딱딱 소리가 나며 타일 하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거기엔 구멍이 뚫겨 있었고, 선이 연결된 두가지 장비가 있었다. 하나는 소형 스피커였고, 다른 하나는 소형 카메라였다. 스피커는 그렇다치고, 카메라는 왜? 타일이 특별한가 하고 떨어지는 타일을 주으려다가 난 길게 난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 구멍은 어디로 난 것이지를 고민하려는 구멍 건너편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전 반대에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죠?"
"그는 진짜로 중요한 인물이야. 선사님께서 선택을 하신 분이지. 그리고 이 시점이 지나면, 겨울이 되자마자 정말로 오세인을 만나게 된다고. 그럼 모든 것이 끝이야. 결혼할만큼 중대한 인연은 함부로 바꿀 수가 없어. 스스로의 선택으로 낙원행을 결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야. 만약 이경민이가 3년후에 죽어 버린다면, 선사님의 일도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냥 오빠를 믿어보는 건 어떨까요? 좋은 사람이잖아요."
"흥, 무슨 소리. 그는 고등학교 때 사람을 죽였어."
"사람을 죽이다니요?"
"말로 한 사람을 죽였지. 이름이 이창동이었던가..그랬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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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너무 설정이 복잡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읽는 사람이 줄어도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니 쓰는 저도 즐겁네요. 아까 어떤 분이 소설게시판에다 이어쓰기에 대한 것을 적은 걸 봤는데,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품활동도 많고 팬도 많은 와핑돌이님과 제가 한편씩 글을 연이어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도 상의하지 않고, 각자 한 편씩을 쓰는 거죠. 와핑돌이님과 전 쓰는 스타일도 장르도 다르니까, 오히려 더 재미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요? 뭐, 그렇게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필력이 좋은 야설을 쓰는 분과 이어서 쓴다면 야한 장면이 많이 없는 제 글에 윤기가 돌지 않을까 해서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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