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 안에서 세상 밖으로 -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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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추락(墜落)2


어떻게 화장실까지 내려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그녀는 2번째 칸의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혹시 잠겨 있으면 어쩌나 했던 그녀의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 다행히도 화장실 문은 쉽게 열렸고, 너무나 급하게 화장실 문을 열어젖히는 그녀를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한 여자가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 여자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어색한 미소를 띄운 채 그녀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문을 닫았다. 무너지듯이 변기에 앉은 그녀가 시선을 들었을 때, 그녀의 가슴은 다시 고동치기 시작했다. 화장실 문 안쪽에 투명 테이프로 붙여진 한 장의 사진. 오늘 아침에 그녀가 메일로 확인했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사진을 떼어 내었다.


‘To 크리에이티브 2팀 디자이너 최연희씨!’


A4용지에 인쇄된 사진의 뒷면엔 친절하게도 그녀의 소속부서와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이 사진이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갔을 때를 상상해본 그녀는 절망의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이 메시지를 읽고 있다면 다행히 다른 사람에겐 들키지 않았겠군. 안그래 연희씨? ㅎㅎ
9층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려면 시간은 좀 걸렸을텐데 말야 ㅎㅎㅎ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연희씨가 더 짜릿해 지려나~

우선 이렇게 해보자고

지금 그 자리에서 옷을 전부 벗는 거야. 사진 속의 연희씨처럼 말이지.
그리고는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잠근 문고리는 풀어두도록 해봐

보여지는 거 좋아하잖아 우리 연희양 ㅎㅎㅎ
기대하고 있을게~~~’


말도 안 되는 주문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노출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가 그녀가 한 행위를 알아버린 이마당에 그렇게 한다고 해서 흥분될 리가 없었다. 단 한 장의 민망한 사진이 그녀를 이토록 나락까지 떨어트려버렸는데 그 상황을 스스로 또 다시 연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보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녀가 주문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누구도 알 턱이 없었다. 그녀는 잠시 그렇게 생각을 추스린 후 사진을 핸드백 속에 챙겨 넣고 화장실을 빠져 나왔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김 카피? 이 피디? 국장님? 사내의 남자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떠올려 보았지만 그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워낙 출중한 외모를 가진 덕분에 그녀를 흘끔거리는 시선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그녀는 언제나 사내에서 남자들의 시선의 중심에 서 있었다. 때로는 그녀조차도 그런 시선들을 즐기기까지 했었으니까…

‘하아…’

나오는 건 한 숨 뿐이었다. 자리에 돌아와 앉아서도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료집을 아무 생각 없이 이리저리 넘기고 있을 때였다.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왔다는 알림 창이 떴다.


‘이런 씨발 개보지 최연희!

내 말이 우스운 모양이지?

보지로 껌 씹듯이 내 말을 씹은 모양인데 이런 개씨발년 같으니라고

니 사진이 사내에 죄다 까발려져봐야 정신차릴 모양이지?

좋아, 그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지

어디다 뿌려줄까? 사내 웹하드? 공유판?

아예 정문 게시판에 붙여둘까? 씨발년

이게 마지막 경고야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지금 그 자리에서 당장 팬티 벗어
벗어서 손에 들고 팔을 들어 니년의 씹물이 잔뜩 묻은 팬티를 내가 볼 수 있게

알아들어?

개씨발년아 10분 주겠어’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여자 화장실이었고, 옆칸에선 인기척 조차 없었다. 그녀는 설마 누가 알까 했던 마음으로 남자의 메시지를 무시했었지만 그 결과는 이렇게 비수처럼 그녀를 되찌르고 있었다. 거친 쌍욕과 함께 날아든 남자의 메시지는 그녀를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그녀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파티션 너머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옆 셀의 부서에서 틀어놓은 야구중계가 TV에서 방송되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추신수의 타석에 집중하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잠시 일어서 주위를 휘둘러 보았지만 그런 그녀의 눈에 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쩜…좋아… ‘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의 알몸 사진이 사내에 뿌려진다면 그 후의 일은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다행이라면 그녀의 자리가 사무실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있어서 눈 여겨 보지 않는다면 그렇게 쉽게 눈에 띄는 자리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스커트 안쪽으로 손을 넣어 팬티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살짝 들고, 손을 뒤로 돌려 엉덩이부터 팬티를 끌어내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녀가 오늘 팬티 스타킹 대신에 밴드 스타킹을 신고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조금씩, 그러나 최대한 신속하게 그녀는 팬티를 벗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지나가는 누가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환한 대낮의 사무실. 그것도 동료들이 오고 가는 그런 곳에서 팬티를 벗는 그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며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힐을 신은 발목에서 팬티를 빼어낸 그녀가 팬티를 말아 쥐었다. 다행히도 팬티는 그녀의 손아귀안에 감춰질 정도의 부피였다. 그녀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색하지 않게 손을 뻗었다.

메시지의 지시에 따른 그녀는 생각만으로도 부끄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치 기지개를 펴는 듯한 동작을 마치고 그녀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얼굴까지 빨개진 듯한 느낌.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조금이라도 진정하려고 할 때 다시 메시지의 알림 창이 떴다.


‘씨발년 평소에는 그렇게 도도한 척 하더니 ㅋㅋ
최연희가 그렇게 개 보지녀였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아 이거 정말 혼자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까운 걸?

자지가 아주 꼴렸어. 딱딱해서 아플지경이라고

씨발년.
지금이라도 당장 니 자리로 가서 니 보지를 사람들 앞에 까발리고 싶어지네

아님 그자리에서 엎어놓고 뒷치기로 쑤셔줄까?

고 예쁜 젖통을 마구 주무르면서 말야.

니년 신음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것 같아 ㅎㅎㅎ

참 니년이 벗어둔 팬티는 봉투에 넣어서 책상위에 올려두도록 해
이따 가지러 갈게

그리고, 다음 지시는 30분 뒤에 다시 할게

그 동안 너도 좀 즐겨봐 원래 좋아하잖아? 안그래? ㅎㅎ 개 씨발년’



그녀는 누가 볼 새라 메시지 창을 닫고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단단히 마음 먹어야 해 최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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